5분도 안 돼 무너지는 20년 바벨탑... 당신의 '평판'은 안전한가
2025-09-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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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이 운명을 가르는 시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방법
'비욘드 리스크' 개인부터 대기업까지 평판 생존전략 공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고 경고한 지 수십 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의 격언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니 오히려 더 절실해졌다. SNS와 유튜브가 일상이 된 지금 그 '5분'은 더욱 짧아졌고 파괴력은 더욱 강해졌다. 2014년 한 대형 금융그룹에서 벌어진 회장과 은행장의 동반 사퇴 사태, 2024년 한 유업체의 경영권 교체까지…. 평판위기가 조직 존폐를 가르는 시대가 됐다.
언론계에서 30여 년간 일하고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KB금융지주 부사장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율촌에서 평판위기 자문 업무를 수행하는 김왕기 씨가 신간 ‘비욘드 리스크 - 위기를 넘어 기회로, 위기관리 인사이트’(메디치미디어)를 펴냈다. 공격수와 수비수, 그리고 객관적 관찰자라는 3개 포지션에서 위기를 바라본 저자의 독특한 시선이 담긴 이 책은 위기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모은다.

김 씨는 중앙일보 기자·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해왔다. 이후 국무총리 공보실장으로 정부 안팎의 소통 업무를 담당했으며, KB금융지주 부사장 시절에는 그룹 차원의 통합 커뮤니케이션 및 위기관리 업무를 총괄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국가 위기 상황에서 당정청 고위급 TFT의 위기 수습에 참여했고, UN총회, 다보스 포럼, OECD 이사회 등의 외교 현장과 UAE 원전 수주 활동에도 실무 기여를 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율촌에서 평판위기에 관한 원스톱 자문을 맡고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인 'KB 굿잡'과 KB금융 공익재단 설립을 기획·추진해 사회적 가치 실현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국민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위기관리의 본질은 정교한 매뉴얼이나 기술적 노하우가 아니라 '인식의 변화'라는 점이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마련하라", "문제가 생기면 CEO가 바로 직접 나서라"와 같은 조언들이 상식으로 굳어졌지만, 현실에서는 그 모든 매뉴얼과 노하우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책에는 저자가 다층적인 경로를 통해 직접 경험하거나 가까이에서 지켜본 생생한 사례들이 담겼다. 2014년 한 대형 금융그룹에서 벌어진 회장과 은행장 간의 갈등은 내부 갈등이 외부에 표출될 경우 평판이 나빠지며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커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새 경영진 체제 출범 후 1년여에 걸쳐 누적된 갈등이 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결국 은행장이 금융감독원에 자진 감사를 요청하면서 내부 갈등이 공식적으로 드러났다. 이후 양측의 공개적인 비판과 책임 공방이 이어졌으며, 마침내 금융 당국의 개입으로 두 최고경영자가 모두 사임하며 사태가 마무리됐다.
지난해 유업체 사례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한국을 대표한 유업체였던 이 기업은 2010년대 들어 여러 평판위기에 잇따라 휩싸였다. 이들 이슈에 대한 대응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가 점차 훼손되면서 결과적으로 경영권 교체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기업이 평판위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그 여파가 경영권 유지를 어렵게 할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평판관리가 단순한 홍보 차원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존립기반과 직결된 전략적 과제임을 상기시켜 준다는 것이다.
현재 위기는 더 이상 정치인, 기업 오너, 고위 공직자 같은 '높은 사람', '돈 있고 뒷배 있는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고 빛의 속도로 퍼지는 SNS, 미투 운동, 갑질 방지법, 중대 재해 처벌법 등 사회 인식과 제도 변화가 가속화하면서, 과거에는 '관행'으로 넘어갔던 일들이 이제는 치명적인 위협으로 전환되고 있다. 공공기관,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견·중소기업, 심지어 개인에 이르기까지 평판위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사소하게 여겼던 일이 한순간에 기업의 존립을 흔들고, 개인에게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히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어떤 기업은 조직 전체가 흔들려 문을 닫았으며, 어떤 개인은 치욕과 불명예는 물론 구속과 법적 처벌까지 당했다. 특히 최근에는 급성장한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 대중의 조명을 받는 유명인들은 그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된다. 마치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 갇힌 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감시받는 세상을 살고 있다.
저자는 여전히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는 억울하다", "이건 다 관행이었다"라고 주장하며 사태를 축소하거나 부정하다가 스스로 위기를 악화시키는 일들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세상의 흐름에 민감했더라면, 또는 사태 발생 후 조금만 더 겸허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사건들이 많았다고 강조한다.
위기는 종종 교통사고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가벼운 접촉으로 끝날 수도, 한순간에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순간의 판단이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실제 사고에 부닥치면, 상당수는 그 상황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는커녕 포크레인으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위기 노출 부담이 커지면서 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조직과 인력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규모 있는 기업이나 기관은 자체 위기관리 조직을 갖추고 있고, 시중에는 다양한 형태의 위기 대응 솔루션이 제공되고 있다. 관련 서적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으며, 주요 컨설팅사나 PR 업체들도 위기 대응을 기본 서비스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막상 일이 닥치면 그 모든 매뉴얼과 노하우가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고, 조직은 내부적으로 갈등에 휩싸인다. 기자들이 몰려들고 여론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고 사방에서 문의가 쏟아지는 등 어수선해지지만, 대응 방향을 잡기는커녕 상황 파악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너가 직접 신속히 나서야 한다"는 조언은 원칙적으로는 옳지만 현실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 오너를 모시는 임원 처지에서 '하늘같은' 오너에게 "직접 나서서 사과하라"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모든 일에 오너가 일일이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최고위층이 나서려면 사전에 철저한 정보와 판단이 전제돼야 하지만, 초기에는 사건·사고의 내용이나 원인, 배경 등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고 내부 조율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라"는 조언 역시 원론적으로는 정답이지만 매뉴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각 상황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채는 능력과 실전에 대비한 훈련과 경험을 갖추지 못했다면 매뉴얼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태권도 교본을 암기했다고 해서, 실제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저자는 위기 대응에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OX 퀴즈가 아니다. 단답형 문제도 아니고, 공식대로 풀면 되는 수학 계산도 아니다. 수많은 변수와 예측 불가능성이 얽힌 복잡한 퍼즐과 같다는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조직의 리더나 고위층, 위기에 노출되기 쉬운 개인과 기업은 무엇보다 먼저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고, 변화에 대한 경각심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로써 절반의 성공을 이룬 셈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식이 바뀌면 대응이 달라지고, 대응이 달라지면 결과 역시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단순한 위기관리 매뉴얼이 아니라고 밝혔다. 특정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수많은 현장을 경험하며 절실히 느꼈던 점을 나누고자 했다는 것이다.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과 접근 방식, 마음가짐과 행동, 준비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고자 했으며, 위기관리의 본질은 결국 '사람'의 문제이며, 태도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책에는 언론계와 정부, 금융기관 등 다양한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거나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례들, 그리고 로펌에서 수많은 의뢰인을 만나며 느낀 안타까움과 지혜, 통찰이 녹아 있다. 대기업과 유명 인사의 사례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작지만 중요한 사례들을 담아내고자 했다.
특히 고심했던 부분은 실명 언급 문제였다고 저자는 밝혔다. 이미 공론화됐거나 보도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실명을 사용했으며, 그 외에는 최대한 익명이나 유사 사례로 처리했다.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가상의 사례를 구성하기도 했다.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명예회장은 추천평에서 "이 책은 김왕기 고문이 수십 년간 현장에서 보고, 듣고, 부딪힌 경험을 담아낸 살아있는 기록이자 실전 지침서"라며 "위기관리는 단순한 법률 대응이 아니라, 그 이전 단계인 '평판관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고 평가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은 "위기관리는 경영의 부수 현상이 아니라 경영 그 자체"라며 "브랜드를 세우는 데 수십 년, 무너뜨리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하다. 이 책은 그 한순간을 막는 법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최준영 지구본 연구소 소장은 "위기는 준비와 대비가 부족할 때 찾아온다"며 "'철저한 대비'와 '적극적이며 유기적인 대응'이라는 키워드를 기억하면 좋겠다. 준비된 사람에게 위기는 또 한 번의 기회라는 것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고 평했다.
출판사 메디치미디어는 "이 책은 단순히 위기를 피하는 기술을 넘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태도와 전략을 담았다"며 "각 분야의 리더, 기업의 임원, 공직자, 언론·홍보·위기관리 담당자는 물론, 평판 관리가 필요한 모든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저자는 "위기 노출 가능성이 크고 위기 대응이 필요한 기업이나 기관, 조직 그리고 위기에 노출될 위험 부담이 있는 개인 모두에게 이 책이 나침반이 되어주길 바란다"며 "독자들이 기계적으로 매뉴얼을 따라 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위기를 보는 시선을 바꾸고 더 현명한 대응을 고민하게 되도록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돕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