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판사마저 선고문 읽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2025-09-1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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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인간으로서의 본성마저 의심하게 된다”

판사도 울었다. 생활고를 이유로 아내와 두 아들을 살해한 40대 가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순간이었다. 매달 흉악 범죄를 마주하면서도 흔들림 없던 재판장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선고문을 읽다 눈물을 쏟으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광주지법 형사12부(재판장 박재성)는 19일 살인 및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지모(49)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씨는 지난 6월 1일 새벽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아내와 고등학생 두 아들을 태운 채 차량을 바다로 몰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범행 전 지씨는 가족에게 수면제가 섞인 음료를 마시게 했고, 자신도 복용한 뒤 차량을 돌진시켰다. 그러나 막상 물에 빠지자 두려움에 휩싸여 안전벨트를 풀고 창문으로 홀로 빠져나왔다.
부모와의 여행에 들떠 맛집을 찾아보며 계획을 세웠던 아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들이 가장 사랑한 부모에게 살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범행 뒤 지씨는 구조 요청조차 하지 않고 지인을 통해 광주로 도주하다 약 44시간 만에 붙잡혔다.
재판부는 "피해 아들들은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가장 사랑했던 부모가 자신들을 살해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고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바다에 빠진 후 답답함을 느끼자 홀로 탈출했을 뿐 아들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며 "범행 직후 피해자를 구하거나 곧바로 구조 요청을 했다면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범행 후 친형의 친구 차량을 얻어타고 달아나는 등 회피로 일관했다"며 "짊어진 빚 때문에 아내와 아들들이 짐이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을 떠올리면 인간으로서의 본성마저 의심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박 부장판사는 또 "타인의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응분의 철퇴를 내리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울먹였다. 재판부는 모든 정황을 고려해 지씨에게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지씨는 건설 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며 카드빚 약 2억원과 임금 체불 3000만원에 시달려왔다. 검찰은 "두 아들은 가족여행이라 생각해 행복한 추억을 만들려고 했지만, 피고인은 라면을 먹는 아이들에게 몰래 수면제를 탄 음료를 건네 잠들게 했다"고 지적하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