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문직 비자 수수료 100배 인상... 미국 기업들마저 경악

2025-09-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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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달러에서 10만달러로... 미 정보기술 업계 큰 타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 신청 시 건당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고 백악관 관계자가 19일(현지시각) 밝혔다.

블룸버그는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H-1B 비자 관련 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새 행정명령의 골자는 수수료 10만 달러를 내지 않으면 H-1B 비자를 통한 입국을 제한하는 것이다. 10만 달러란 수수료는 현재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인상 폭이다. 현재 H-1B 비자 신청 수수료는 추첨 등록비 215달러, 고용주 청원서 제출비 780달러 정도로 기존 1000달러의 100배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 비자의 최대 체류 기간인 6년을 채우기 위해서는 비자를 신청하는 개인이나 이 개인을 고용하는 회사가 총 60만 달러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는 이번 조처가 저임금 외국인 노동력으로부터 미국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H-1B 비자 제도가 남용되면서 미국 내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미국인들의 과학기술 분야 진출을 막는다며 이것을 안보 문제로 규정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포고문 서명식에서 "갱신 때나 처음에나 회사는 이 사람이 정부에 10만 달러를 지급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수료 인상과 더불어 H-1B 비자 소비자의 임금 규정도 손볼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 장관에게 현행 임금 규정을 개정하도록 지시해, 기업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미국인의 임금을 깎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방침이다. H-1B 비자의 최대 수혜국은 인도로, 지난해 H-1B 비자 승인을 받은 사람의 71%가 인도 국적이었고 중국이 11.7%로 그 뒤를 이었다.

이번 조처는 미국 정보기술 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줄 전망이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대형 기술기업들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같은 전문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H-1B 비자에 크게 의존해 왔다. 실제로 아마존은 올해만 1만 건 이상,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는 각각 5000건 이상의 H-1B 비자를 승인받았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정보기술 서비스 기업인 코그니전트의 주가가 5%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날 사내 이메일에서 자사의 H-1B 비자 보유자들에게 "당분간 미국 내에 체류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H-4비자 보유자들도 미국 내에 체류해야 한다고 했으며, 현재 미국 바깥에 체류 중인 H-1B, H-4비자 보유자의 경우 "20일 시한 내에 미국으로 돌아올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비자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미국으로 들어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투자은행 JP모건의 이민 관련 외부 법률고문도 H-1B 비자 보유자들에게 "미국을 떠나지 말고 추후 지침이 나오기 전에는 해외여행을 삼가라"며 "미국 외 지역에 체류 중이라면 9월 21일 0시1분 이전에 미국으로 돌아올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국내 기업들은 이번 조처가 한미 비자 제도 개선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계는 이번 결정을 미국 내 기업들이 외국 인력 대신 자국 인력을 채용하도록 압박하는 조치로 본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활동 중인 국내 기업도 이공계 전문 외국 인력의 풀이 좁아지고 비용이 상승하는 등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법인에서 외국 인력을 채용해야 할 수 있는데, 1인당 연간 1억4000만원씩 비용을 내야 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법인을 둔 국내 기업의 경우 현지에서 근무할 우리나라 인력에 대해 대부분 주재원용 L-1 또는 E-2 비자를 발급받도록 하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인한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H-1B 비자를 활용해 외국 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대부분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내 글로벌 기업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의 타격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장기적으로는 우리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아 국내 기업의 인재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번 사안이 한미 비자 제도 개선 논의에 있어 돌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더욱 큰 걱정거리다. 정부는 이번 논의에서 H-1B 비자의 한국인 쿼터를 확보하는 동시에 해당 쿼터에 숙련공도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이제는 전략 변경이 불가피하게 됐다. 비자 문제에서도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자국 이익을 철저히 챙기겠다는 트럼프 행정부 방침이 명확해짐에 따라, 한국에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내세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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