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작물 아니었어?…쌀보다 무려 10배 더 번다는 곡성 ‘이 작물’ 정체

2025-09-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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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 왕국, 곡성에 숨겨진 농가 비결은?
흙 속의 달걀, 건강과 맛의 비밀

전남 곡성군 죽곡면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토란 주산지로 꼽힌다. 섬진강과 대황강의 맑은 물, 비옥한 토양,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큰 분지 지형이 어우러지며 토란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본래 열대와 아열대에서 잘 자라는 작물인 토란이 곡성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매년 가을이면 죽곡 들녘에서는 ‘죽곡 토란’ 수확으로 분주한 손길이 이어진다.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자료 사진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자료 사진

토란은 예로부터 건강식으로 알려져 왔다. 식이섬유, 칼륨, 각종 무기질이 풍부해 소화를 돕고 면역력 강화,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 알레르기나 당뇨 환자에게도 부담이 적어 최근 웰빙 트렌드와 맞물리며 소비층이 넓어지고 있다. ‘흙 속의 달걀’이라는 별명처럼 토란은 구수한 흙 향을 간직한 채 삶거나 찌면 포근포근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내고, 감자보다 담백하면서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퍼진다. 이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한 식재료로 손꼽힌다.

25일 전국매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죽곡면에서 4000평 규모 밭에서 토란을 재배하는 조현삼 농부는 “토란 농사는 쌀 농사에 비해 매출 면에서 10배 이상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감자 농사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작물이 토란”이라고도 털어놓았다. 그만큼 높은 수익성 뒤에는 농민의 고된 노동과 정성이 뒷받침된다.

곡성군은 토란 산업을 지역 핵심 자원으로 키우기 위해 가공센터와 저장시설 확충, 가공식품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토란 가루, 토란 칼국수, 토란 빵 등 새로운 상품들이 출시되면서 ‘토란=곡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강화되는 추세다. 농민들은 “군 차원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토란 산업이 농가 소득 증대를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흙 속의 알' 토란 / 전남 곡성군 제공, 연합뉴스
'흙 속의 알' 토란 / 전남 곡성군 제공, 연합뉴스

토란과 곡성의 인연은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경동시장에서 청과상을 운영하던 상인이 추석 무렵 토란 물량을 구하기 어려워 곡성 지인에게 재배를 권한 것이 계기였다. 1985년 곡성 죽곡면 신풍리에서 본격 재배가 시작됐고, 첫 출하에서 40㎏에 10만 원이라는 파격적 가격을 기록하며 농가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후 재배 면적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곡성은 자연스레 우리나라 대표 토란 산지가 됐다.

곡성의 지형적 특성은 토란 농사를 뒷받침한다. 연평균 강수량이 1391㎜에 달하고, 분지형 기후 덕에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크다. 이는 고온다습한 환경을 선호하는 토란 재배에 유리하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관통하며 발달한 지류는 논은 물론 밭에서도 토란 재배를 가능케 한다. 토양 역시 양토와 사양토가 주를 이뤄 토란 생육에 적합하다.

토란은 단순한 농가 소득원을 넘어 우리 민속 음식의 뿌리와도 맞닿아 있다. 추석 차례상에 오르는 토란국은 조상들이 즐겨 먹던 음식을 제사상에 올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국물은 명절 밥상을 풍성하게 채우며, 세대를 넘어 내려온 음식 문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토란으로 만든 음식들 / 곡성군 제공, 연합뉴스
토란으로 만든 음식들 / 곡성군 제공, 연합뉴스

곡성의 토란 문화는 식탁을 넘어 지역 정체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광주에서 곡성으로 향하는 길목, 곡성기차마을 휴게소에서는 ‘토란대육개장’과 ‘토란 완자탕’이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다. 곡성 읍내에는 방송에 여러 차례 소개된 토란 전문 음식점들이 즐비해 ‘토란 맛의 성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유튜브, 광주KBS

곡성이라는 이름 자체도 흥미롭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때는 ‘곡성(曲城)’이라 불렸고, 고려시대에는 교통 불편으로 장사꾼들이 통곡했다는 데서 ‘곡성(哭聲)’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곡식이 많이 나는 성’이라는 의미의 ‘곡성(穀城)’을 거쳐 현재의 ‘곡성(谷城)’에 이르렀다. ‘곡성’의 이름과 지형, 그리고 그 땅에서 자라난 토란은 우연이 아닌 운명적 연결고리처럼 다가온다.

곡성 토란 수확 / 전남 곡성군 제공, 연합뉴스
곡성 토란 수확 / 전남 곡성군 제공, 연합뉴스

한때 열대 작물로만 여겨졌던 토란은 이제 곡성을 상징하는 ‘효자 작물’로 자리 잡았다. 구수한 맛과 건강한 효능, 그리고 농민들의 땀과 정성이 담긴 곡성 토란은 쌀보다 10배의 고소득을 올리며 지역 경제를 살리고, 명절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채우는 진정한 ‘이 작물’의 놀라운 정체다.

home 김희은 기자 1127khe@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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