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패러디…유럽 다녀온 전유성이 내놓은 기발한 책 제목

2025-09-26 10:21

add remove print link

한 글자로 탄성 자아낸 전유성의 유머 감각 재조명

고 전유성. / 뉴스1
고 전유성. / 뉴스1

작고한 '개그계 대부' 전유성(76)은 무대 위 웃음을 넘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가 생전에 펴낸 도서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특유의 재치와 기발한 유머 감각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26일 출판계에 따르면 이 책은 2001년 전유성이 아내 진미령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출간한 기행문이다.

제목부터가 유홍준 교수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패러디한 책이다. 틀린 제목도 아니다. 왜냐면, 남의 나라 갔다 온 이야기니까.

제목의 ‘나’를 ‘남’으로 바꾸는 단 한 글자의 변주만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단순히 웃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글자 패러디로 기존 담론을 비트는 통찰력을 보여줬다. 원작의 진지한 탐방기를 연상시키면서도 동시에 전유성다운 위트가 녹아 있어 독자는 물론 평론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책에는 △ 암스테르담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 조심하자 △ 우리 돈에는 코미디언 얼굴 박자 △ 그 나이에 아직도 산타를 믿냐 △ 영국 신사들도 비 오면 뛴다 △ 박물관에 없던 한글 안내문, 쇼핑센터엔 있더라 등 유머러스한 소제목이 담겼다. 전유성은 103일 동안 유럽 15개국을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경험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문화유산을 대하는 전통적인 태도와는 달리, 그는 ‘남의 것’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해 해외 문화를 유쾌하고 풍자적으로 해석했다. 이는 일상의 사소한 관찰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기존의 틀을 비트는 방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낸 그의 코미디 철학과도 닮았다.

출간 당시 이 책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 전유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됐다.

흥미로운 인연도 있다. 유홍준 교수와 전유성은 서울청운초등학교 동창으로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전유성의 패러디 센스에 유 교수 역시 감탄했고, 실제로 2012년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토크콘서트에 전유성이 초청받기도 했다.

전유성은 전날 폐 기흉 증세 악화로 입원 중이던 전북대 병원에서 별세했다.

가수 진미령과 9살 나이 차를 극복하고 1993년에 결혼했으나 17년 만인 2011년 이혼했다. 2018년 전북 남원으로 거처를 옮겨 딸 내외와 함께 지내왔다.

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