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정부 "배임죄 폐지"... 앞으로 뭐가 바뀔까

2025-09-30 09:00

add remove print link

70년 넘은 형사처벌 중심 경제 규제 전환점 맞아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 뉴스1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 뉴스1

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범죄로 다룰 것인가, 민사상 책임으로 한정할 것인가. 한국 경제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변화가 예고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30일 배임죄 폐지 방침을 확정했다고 밝히면서 70년 넘게 유지돼온 형사처벌 중심의 경제 규제가 전환점을 맞게 됐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TF)' 당정 협의에서 "민주당과 정부는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했다"며 "경제형벌의 민사책임 합리화는 국민 권익과 민생 경제를 위한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임죄는 형법 제355조 제2항에 규정된 범죄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이익을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다.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해온 이 조항은 회사 임원이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경영 판단을 내렸을 때 주로 적용돼왔다.

문제는 배임죄가 경영 실패와 범죄 행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임무위배 행위'와 '고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기업 경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단순한 경영 실패인지 범죄 행위인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회사 자산을 부당하게 처분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계약을 체결하거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회사 기회를 활용하는 등의 행위가 배임죄로 처벌될 수 있지만, 그 판단 기준이 사후적이고 결과론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김 원내대표는 "과도한 경제형벌은 기업뿐 아니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기업인의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범죄로 몰아 기업 운영과 투자에 부담을 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업 경영진들이 형사처벌을 우려해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공격적인 투자나 혁신적 의사결정을 꺼리게 된다는 분석이 경제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배임죄 폐지는 형사처벌 대신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경영 판단의 실패로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 대신 금전적 배상 책임만 지게 되는 구조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형벌은 경감하되 금전적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며 "경미한 의무 위반 사항은 과태료로 전환하는 등 국민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정은 처벌 공백 우려에 대응하기 위한 보완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김 원내대표는 "중요 범죄의 처벌 공백이 없도록 대체입법 등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 역시 "선의의 사업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행정 제재로 바로잡을 수 있는 사안은 행정제재를 먼저 부과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명백한 횡령이나 사기 등 중대 범죄는 계속 처벌하되 경영 판단의 영역은 형사처벌에서 제외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배임죄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거나 적용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기업 경영진의 책임을 주로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회사법상 책임으로 다루고 있으며, 형사처벌은 횡령이나 사기 등 명백한 범죄 행위에 국한된다.

이날 당정 협의에는 김 원내대표, 한정애 정책위의장, 권칠승 TF 단장 등 당 관계자들과 함께 정부 측에서는 구 부총리, 정성호 법무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김 원내대표는 "앞으로 경제형벌과 민사책임 합리화를 함께 추진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배임죄 폐지는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측면과, 기업 경영진의 책임을 약화시켜 부정행위를 방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존재하는 사안이다. 대체입법의 구체적 내용과 실효성이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