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 해체에 검사들 폭발 “나라가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자”

2025-10-0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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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위에 있는 것이 쓰라고 있는 머리라면 생각 좀 하고 움직였으면”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이후 검사들의 반발이 격화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 파견 검사 40명 전원이 "검찰청 폐지로 수사 검사의 공소 유지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상황에서 특검 업무만 수사·기소·공소 유지를 결합해 담당하는 것이 모순"이라며 집단으로 원대 복귀를 요청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검찰 내부에 큰 동요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검사장급을 포함한 고위 간부 검사들은 검찰청 폐지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뉴스1
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뉴스1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영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51·사법연수원 31기·검사장급)은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강제노역'이라는 제목의 장문의 게시글을 올려 검찰청 폐지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검찰청, 공소청, 중수청 같은 전국 규모의 거대 국가기관을 폐지 및 신설하는 것이 1년의 유예기간에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여당이 제안한 법률안에 대해 "조악하다"고 직격했다.

그는 경찰 국수본과 중수청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방안, 양 기관의 수사대상 범위와 물적 관할 범위, 충돌하는 수사권한에 대한 조정방법 등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진 바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형사소송법 전면개정이 필요한데 보완수사권이나 보완수사요구권 존치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검사 작성 조서와 증거물을 포함한 각종 증거의 증거능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특사경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유지시킬 것인지 등 심도 깊은 검토 후에 결정해야 할 내용이 잠깐만 생각해 봐도 수백 가지가 넘는다"며 "이 정도의 대규모 개정이라면 학계, 실무계, 판·검사 등 법조의 형사사법 전문가들이 수년간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형사소송규칙을 비롯한 대법원 관장 법령과 각종 서식 개정 문제도 제기했다. 박 연구위원은 "총리실 추진단에 법원 구성원은 전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1년 내 형사소송법 개정도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데, 행정부도 아닌 대법원이 관장하는 각종 후속법령 개정은 어떻게 할 계획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뉴스1
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뉴스1

대검 훈령 42개, 예규 252개, 지침 106개, 업무지시 599개, 업무연락 284개에 대해서도 상위 법령과의 조화 여부를 검토해 모두 개정, 폐지 또는 신설해야 한다고 박 연구위원은 밝혔다. 그는 "대검에서 작년 연말부터 지난 3월까지 일부 훈령, 예규를 개정, 폐지하는데만도 4~5개월 걸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녕 그 모든 작업이 1년만에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인력과 시설 문제도 해결 과제로 제시했다. 박 연구위원은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모든 수사권이 박탈되면 2100여명의 검사와 6000여명의 검찰수사관 중 잉여인력은 재개발 구역 철거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듯 그 기간 내에 강제 전직이라도 시키는 것이냐"며 "검찰청의 산하 지청 하나를 신설하는 데도 법안 통과부터 건물 신축, 인력조정·배치 등에 3, 4년 이상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지난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윤호중 행안부 장관에게 '2000명이 넘는 검사와 6000명이 넘는 검찰수사관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냐'고 질의하자 윤 장관이 "다른 역할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중수청과 공소청에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 계획이 있다"라고 답변한 사실도 언급했다. 박 연구위원은 "제 귀에는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뜻으로 들렸다"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검사들을 비롯해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1년이라는 단기간 내에 형사사법체계, 법령, 조직, 인력, 예산, 시설 등을 망라하는 저 난제를 해결하는데 분명 개미지옥 같은 수렁에 빠질 것"이라며 "개미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슬그머니 유예기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범죄 대응 공백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박 연구위원은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개정 정부조직법대로 시행되고 종국적으로 검사의 보완수사권마저 폐지된다면 '범죄천국, 피해지옥' 시대가 열리고 범죄 피해자들의 아우성이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청이 폐지되고 수사권마저 박탈되면 보이스피싱, 다단계 사기, 유사수신, 코인 사기, 주가조작, 불법도박사이트, 전세사기, 재개발·재건축·지역주택조합 비리, 마약 등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범죄에 대한 대응의 공백과 더 나아가 공직자, 정치인들의 부패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은 분명히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 뉴스1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 뉴스1

여의도 증권가의 분위기도 전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검찰은 폐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다 인력도 부족해 손발이 묶여 있고, 경찰은 지능적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능력이 부족하며, 중수청은 설립도 되지 않은 지금이 기회라며 '빨리 치고 빠지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며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이 역대 최고액을 갱신하고 있는 지금, 다른 범죄 또한 그 양상과 잠재적인 범죄자들의 심리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검 파견 검사들의 복귀 요청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정치권에서 "하극상, 오만방자", "국가공무원법 위반, 형사처벌 대상", "항명, 범법, 위법" 등의 발언이 나온 것을 거론하며 "위와 같은 정치권의 겁박은 독일 나치 시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유태인들에게 동료 유태인을 밀고하라 요구하면서 밀고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강제노역을 시키는 것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그는 "가까운 미래 검찰해체와 현재 검사의 직무를 둘러싼 모순적 상황에서 검사들에게 그 양심에 반하는 수사 업무를 강요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강제노역과 같다는 생각"이라며 "특검 파견 검사들이 지난 수개월 파견 기간 동안 공직자로서, 검사로서 보여준 열정과 헌신과 그리고 지금의 양심 어린 목소리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믿는다"고 했다.

강수산나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57·사법연수원 30기)는 이날 이프로스에서 드라마 '트라이'를 언급하며 "검찰의 요즘 상황이 한양체고 럭비부 선수들 같다"며 "검찰청 폐지를 기정사실화한 이후 새 정부는 검찰총장을 임명하지 않았고, 그다음엔 일선의 수사력 있는 정예 멤버들을 특검에 대규모로 차출해 갔다"고 말했다.

강 부장검사는 "요즘 일선 검찰은 검사 부족으로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다"며 "검찰청 폐지를 비롯해 형사사법시스템 전반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직접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의견 제시를 개개 검사의 불만으로만 폄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검찰 내부망에는 이들 게시글에 대한 지지 댓글이 잇따랐다. 박철완 부산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53·사법연수원 27기)은 박 연구위원의 글에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 한국이 법이 지켜지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한 검사들을 악마시하는 선동이 횡행하는 나라에서 내가 검사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들 때면 제 자신의 자폐성이 대견하다"며 "타인이 해괴망측한 괴성을 지른다고 해서 검사인 우리들까지 위축되진 않았으면 한다. 눈 부릅뜨고 나라가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공봉숙 서울고검 검사(50·사법연수원 32기)는 강 부장검사의 글에 "저도 부족한 글솜씨와 내향성 기질에도 불구하고, 3·1운동에 태극기를 흔드는 심정으로 보잘것없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며 "독립투사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지지 의견을 밝혔다.

공 검사는 앞서 지난달 30일 내부망에 김건희 특검팀 검사들의 복귀 요청을 환영한다며 "민중기 특검이 특검법 취지와 내용을 고려할 때 성공적인 공소 유지를 위해 수사한 검사들이 기소와 공소 유지에도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고 한다. 특검을 제외한 모든 사건에 대해서는 성공적인 공소 유지가 필요 없다는 것이 최근 통과된 법안의 입법 의도냐"라고 비판하는 글을 게재한 바 있다.

조광훈 동부지검 조사과장은 "검찰개혁 총론은 정부조직법 몇 개 조항만 손보면 되지만 검찰개혁 각론은 보통 문제가 아니고 난관 중의 난관"이라며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남겨둘지가 조속히 확정돼야 형사소송법을 개정할 수 있다. 보완수사권을 부여할지 부여하지 않을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형사소송법을 먼저 개정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는 "1년의 시행유예 기간 가지고는 어림택도 없다. 아마도 이미 통과된 정부조직법 중 검찰청 폐지 조항과 공소청과 중수청을 설치하는 조문은 시행하기도 전에 시행의 연기를 위한 부칙조항을 재개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김민아(사법연수원 34기) 광주지검 목포지청장은 "검찰청 이름이 바뀌면 도로표지판은 누가, 어떻게, 무슨 비용으로 교체할 것인지, 교정공무원들은 행안부 소속인 중수청에 구속 피의자 조사를 위한 호송을 할 수 있을까"라며 "목 위에 붙어 있는 것이 쓰라고 있는 머리라면, 제발 생각을 좀 하고 움직였으면 한다"고 했다.

김건희 특검팀 파견 검사 40명 전원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별검사에게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수사 검사의 공소 유지 원칙적 금지 지침 등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모순되게 파견 검사들이 직접 수사·기소·공소 유지가 결합한 특검 업무를 계속 담당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원대 복귀를 요청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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