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교도소 죄수 1인당 공간 너무 비좁아... 대책 마련해야"
2025-10-1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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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에게 권고
인권위는 최근 교도소와 구치소의 수용 환경이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권고는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용 중인 복수의 수용자들이 과밀수용으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성이 침해됐다며 제기한 진정을 바탕으로 내려졌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일부 시설에서는 수용자 1인당 면적이 법무부 지침 기준인 2.58㎡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길게는 320일 이상 2.00㎡의 공간에서 생활한 경우도 있었다. 더 좁은 1.28㎡ 공간에서 수일을 보낸 사례도 확인됐다.
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는 “1인당 수용면적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욕구조차 충족하기 어려울 만큼 협소하다면, 그 자체만으로 이미 국가형벌권 행사의 한계를 넘어선 처우”라고 판단했다. 이는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 것으로, 행복추구권의 본질적 내용을 위협한다고 명시했다.
결정문에 따르면, 진정인 중 한 명은 1.89㎡ 면적의 거실에서 65일, 2.12㎡에서 33일, 2.43㎡에서 2일을 생활했고, 또 다른 진정인은 1.7㎡에서 7일, 1.89㎡에서 13일을 보냈다.
인권위는 “이 정도의 공간은 성인 남성이 수면 시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칼잠을 자야 하는 수준으로, 인간의 기본적 생활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수도권 교정시설의 수용률은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한 교도소의 경우 정원 1,100명에 1,330명을 수용해 수용률이 120.9%에 달했다. 수도권 일부 구치소는 1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수용자 증가와 가석방 제도의 소극적 운영, 교정시설 확충의 어려움 등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으나, 인권위는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은 국가의 의무 방기라고 봤다.
인권위는 해외 사례와의 비교도 제시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고등법원은 11.54㎡의 방에 3명을 수용한 것은 인간의 존엄에 반한다고 판결했으며, 유럽인권재판소는 수감자 1인당 3㎡를 최저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 연방교정시설은 2인실 7.43㎡, 3인실 14㎡로 1인당 최소 약 3.7㎡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기준은 화장실을 제외한 2.58㎡로, 선진국과 비교해 현저히 좁다.
인권위는 “수용자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법무부가 정한 기준 면적은 확보돼야 하며, 그보다 좁은 공간에서의 수용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과밀수용은 단순히 생활 불편을 넘어, 신체적·정신적 건강 악화와 위생 문제, 수면 부족, 수형자 간 갈등 등 2차적 피해를 유발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교정의 목적 자체를 훼손하고 재사회화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정문에는 교정시설의 과밀수용이 특정 기관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명시됐다.
인권위는 “과밀 문제는 수용자 증가, 교정시설 확충의 지연, 가석방 제도의 소극적 운영, 부지 확보의 어려움 등 사회·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교정기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실제 법무부는 지난해 9월 ‘전반적 과밀 해소를 위한 이행계획’을 인권위에 제출했지만, 아직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인권위는 “이행계획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제 수용률 완화를 위한 가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권고는 인권위가 2022년부터 매년 1~3차례 반복적으로 법무부에 교정시설 과밀 문제 개선을 촉구해온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2024년 기준 전국 교정기관의 평균 수용률은 122.1%로, 55개 기관 중 16곳은 130%를 넘었다. 인권위는 “교정시설 내 과밀수용은 단순한 행정 문제를 넘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의 침해이며, 국제인권규약과 유엔 피구금자 처우규칙에도 반한다”고 강조했다.
결정문에는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인용됐다. 헌재는 2013헌마142 결정에서 “국가는 형벌권을 행사할 때 인간의 존엄을 훼손할 수 없으며, 생존의 기본조건이 박탈된 시설에 사람을 수용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 역시 2022년 판결에서 “1인당 면적이 2㎡ 미만인 거실에 수용한 것은 수용자의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교정시설 확충을 위한 중장기 계획 수립 △가석방 제도의 적극적 운영 △신규 시설 부지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 마련 등을 권고했다. 또한 “과밀수용이 단순히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된 만큼, 국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