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2개월 앞두고 사망한 육군 병장…유족 “괴롭힘 있었다”
2025-10-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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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부대의 암울한 집단 괴롭힘의 실체는?
전북 진안에서 제대 예정이던 육군 병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그가 생전 부대 내에서 이른바 ‘기수 열외’라는 집단 괴롭힘을 당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12일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한 내용이다.
해당 부대 측은 이러한 사실을 유족에게 알리지 않아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육군에 따르면, 육군수사단은 임실 소재 부대 소속 병장 A씨(21)의 사망과 부대 내 가혹 행위 간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A씨는 지난해 입대했으며, 지난달 18일 오전 5시쯤 진안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현장은 그의 부대에서 약 27㎞ 떨어진 곳이었고, A씨는 해당 지역과 연고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육군수사단에 넘겼으며, A씨는 전역을 두 달가량 앞두고 부대를 무단 이탈한 상태였다.

수사 과정에서 육군수사단은 A씨가 사망 당일 새벽 부모에게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며 죽음을 암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A씨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온라인 단체 채팅방 대화에서는 “간부가 괴롭힌다”거나 “병사들이 휴대전화 충전기를 셔틀처럼 쓰게 한다”는 내용이 발견돼, 기수 열외 정황을 뒷받침했다. 기수 열외는 군대에서 특정 병사를 집단으로 따돌리거나 군번에서 제외해 부대원 모두가 그를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악습을 일컫는다. 육군수사단은 “부대원 전체가 A씨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와 같은 전·현직 병사들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사례로 A씨의 침상은 내무반 입구 쪽 맨 앞에 배치돼 있었다. 통상 병장부터 계급순으로 내무반 안쪽에 배치되는 관례와 달라 유족은 이를 문제 삼았다. 유족이 생활관을 찾아 침대 매트와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매트에 구멍이 나 있고 전역한 병사들의 배낭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유족은 “A씨가 생전에 부대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보여준다”며 지휘관들이 이를 방치한 사실에 강한 분노를 표했다. 이에 대해 부대 측은 “지난달 훈련 때문에 생활관을 옮기는 과정에서 부대원끼리 자유롭게 침상 위치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A씨 유족은 부대 부사관 B씨를 직권남용과 협박 혐의로 전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 고소할 예정이다. 고소장에는 B씨가 사건 전날 A씨를 크게 혼내며 “다음 날 징계하겠다”고 압박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A씨의 시신은 경기 성남 육군수도병원 냉동고에 안치돼 있으며, 유족은 장례 절차를 미루고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유족은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 제대를 앞두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며, 이번 사건을 일종의 ‘사회적 타살’로 규정했다. 또한 집단 따돌림에 가담하거나 이를 방조한 지휘관과 병사 전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 추궁을 요구하며,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촉구했다. 부대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109/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