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대신 '21호'…캄보디아 감금된 한국인들, 물건처럼 불렸다

2025-10-1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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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감금된 피해자 “타이어 같은 소모품 취급”

캄보디아에서 범죄조직에 납치돼 고문 끝에 숨진 대학생 박 모 씨와 함께 감금돼 있던 또 다른 피해자의 증언이 나왔다. 그는 박 씨가 조직 내에서 ‘21호’로 불리며 물건처럼 취급됐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캄보디아 깜폿지방검찰청이 살인과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한 중국인 3명.  / AKP통신 홈페이지 캡처
지난 10일 캄보디아 깜폿지방검찰청이 살인과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한 중국인 3명. / AKP통신 홈페이지 캡처

13일 SBS 단독보도에 따르면 박 씨와 같은 공간에 갇혀 있던 40대 남성 A 씨는 감금 135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는 “중국인 조직원들이 박 씨를 ‘21호’라고 부르라고 지시했다”며 “저는 ‘2호’였고 다른 피해자들도 감금된 순서에 따라 번호가 매겨졌다”고 밝혔다. A 씨는 당시 모두 23명의 한국인이 함께 감금돼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박 씨의 몸 상태가 이미 심각했다고 회상했다. “몸이 엉망이라 바로 일을 시킬 수 없는 상태였다”며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타이어처럼 쓰다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문 정황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2층 침대에 수갑으로 묶어 놓고 몽둥이로 때리거나 전기 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음성 파일에는 피해자가 “모른다”고 말하자 조직원이 “또 모른다고 해라. 이 XX야. 손 대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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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하루 최대 17시간 동안 보이스피싱 범죄에 강제로 동원됐다. 실적이 낮거나 구조를 요청하다 적발되면 폭행과 고문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박 씨는 지난 8월 캄포트주 보코르산 인근 범죄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국내 가족에게는 출국 직후 “감금됐으니 5000만 원을 보내라”는 협박 전화가 걸려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현지 조직과 연결된 국내 연계조직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국내 조직은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며 그동안 수사망을 피해 온 것으로 파악된다.

정치권도 캄보디아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한국인 납치·감금 사태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여야 의원들은 “정부가 범부처 차원에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군사작전 수준의 대책까지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캄보디아 납치·감금 신고가 2021년 이후 급증했는데도 정부 대응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은 “ODA 수혜국인 캄보디아에는 외교·경찰적 대응을 넘어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도 “소말리아 해적 납치 사건처럼 군사작전도 고려해야 한다”며 “수백 명이 절망적 상황에 놓여 있는데 정부가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신고 건수가 꾸준히 증가했는데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대응 부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home 정혁진 기자 hyjin2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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