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서 한국인 64명 송환] 전원 범죄 피의자... 적색수배자까지
2025-10-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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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수천 명이 파산했는데 송환 소식이 기쁜가" 피해자 분노

피해자이자 범죄자. 18일 오전 송환된 한국인 64명의 실체다.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스캠 등 범죄에 가담했다가 현지에서 구금됐던 한국인 64명이 전세기로 강제 송환돼 전원 체포됐다. 이들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는 18일 오전 8시 37분쯤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3시 15분쯤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테초 국제공항을 떠난 지 약 5시간 20분 만이었다.
국적법상 국적기 내부도 대한민국 영토로 간주돼 기내에서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이들은 기내에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받은 뒤 체포됐다. 항공기 탑승과 동시에 기내에서 체포영장이 집행됐고, 전원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이들은 공항에 도착하는 대로 각 지역 경찰서로 이송됐다.
입국 게이트에 들어선 송환 대상자들은 대부분 20~30대 남성으로 청년층이었다. 양손에 천으로 가려진 수갑이 채워진 이들은 대부분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가린 채 경찰관들과 함께 이동했다.
64명 모두 전세기에서 내리자마자 피의자 신분으로 관할 경찰관서로 압송돼 범죄 혐의점을 수사받는다. 이들을 호송할 경찰관 190여 명이 전세기에 동승했다. 인천공항에는 이날 새벽부터 피의자들을 태울 호송용 승합차 23대가 대기했다.
송환자들은 충남경찰청 45명, 경기북부청 15명, 대전경찰청 1명, 서울 서대문경찰서 1명, 경기남부청 김포경찰서 1명, 강원 원주경찰서 1명 등으로 분산됐다. 경찰은 이를 통해 캄보디아 등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의 실체도 규명할 방침이다.
이들은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감금됐던 피해자이면서도 한국인 대상 피싱 등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인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송환 대상자들은 이른바 '웬치'로 불리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 스캠(사기) 등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요 혐의는 보이스피싱, 리딩방 투자사기, 로맨스스캠, 노쇼사기 등이다.
보이스피싱은 전화를 이용해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를 속여 금품을 편취하는 범죄다. 로맨스 스캠 조직은 딥페이크 기술로 만든 가상의 미녀 프로필을 내걸고 SNS를 통해 남성들에게 접근한 뒤 금품을 가로채는 수법을 사용했다. 일부는 물건을 구매해 물류센터로 보내면 보수를 주겠다고 속이고 물품 대금, 출금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이른바 '부업 사기' 수법도 사용했다. 노쇼 사기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겠다며 예약한 뒤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잠적하는 범죄 유형이다. 외국에 본거지를 두고 범죄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경우 범행이 분업화·고도화돼 적발이 어렵고 피해가 심각하다.
64명 중 59명은 캄보디아 당국의 사기 단지 검거 작전 때 붙잡혔다. 나머지 5명은 스스로 신고해 범죄 단지에서 구출됐다. 추후 범죄 혐의점이 발견돼 이들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대부분은 한국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피의자 신분으로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적색수배자도 포함됐다.
이날 송환된 64명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이민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전원이다. 캄보디아 국가경찰청이 당초 밝힌 59명보다 5명 늘었다. 단일 국가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송환 작전이기도 하다.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송환 직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송환자들에 대해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노쇼 사기와 같은 부분에 다 연루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당국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없고, 추가 범죄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다"며 "마약 투약 의혹도 많아 송환된 분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마약 검사를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송환된 피의자들은 보이스피싱 등 다양한 범죄에 연루된 인물들로, 수사를 통해 구체적인 혐의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납치·감금을 당한 뒤 협박에 못 이겨 범죄에 가담했는지, 불법성을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도 경찰 수사로 밝혀낼 부분이다. 자발적으로 범죄에 가담한 이들이 경찰에 붙잡힌 뒤 '감금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고 한다.
송환된 64명이 전부 피의자였던 만큼 이번 송환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조용술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재명 정권은 성과에 급급해 피해자 구출이 아닌 캄보디아 내 구금된 피의자부터 전세기로 송환했다"며 "이 중에는 강력범죄 피의자에게 내려지는 최고 수준의 국제수배 대상인 적색수배자도 포함돼있다"고 비판했다. 아직 현지에 남아있을 납치 피해자를 찾아내 송환하는 작전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캄보디아 범죄단지 조직의 '부업 사기'에 당해 1억 4800만원을 잃은 A씨(48)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들 때문에 수백, 수천 명이 파산했는데, 송환 소식이 기쁜가"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A씨는 "물건을 대신 구매해 보내면 보수를 준다는 말에 속아 대출까지 받았다"며 "매달 380만원씩 개인회생금을 갚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날 송환된 캄보디아 구금 한국인들 상당수도 범죄 조직원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범죄수익 상당수가 '윗선'인 중국계 조직으로 흘러 들어가는 만큼, 금전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과 영국이 범죄단지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린스 그룹'에 대해 제재를 적용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피해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은 캄보디아 당국과 함께 추가로 송환될 한국인 범죄자와 피해자를 찾는 데 앞으로도 협력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