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노상원에게 '정치인 살인 예비음모' 혐의 적용했다

2025-10-2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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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에 적혀 있던 '피격' '바닷속' '연평도 등 무인도'

노상원 전 정보사령부 사령관 / 연합뉴스
노상원 전 정보사령부 사령관 /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을 내란목적살인 예비음모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팀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기소돼 수감 중인 노 전 사령관을 전날 내란목적살인 예비음모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노 전 사령관을 구속기소한 뒤 출범한 특검팀이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검팀은 최근 개정 특검법에 '자수자 및 수사 조력자에 대한 필요적 감면 제도' 조항을 신설한 이후 노 전 사령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면서 수첩 내용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진술할 경우 형량 등을 감면해줄 것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노 전 사령관에게 수첩에 기록된 '수거 대상' 명단과 '처리 방안'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노 전 사령관은 그간 수첩 내용 등과 관련한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특검팀의 질문에 대부분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특검팀은 그의 피고발 혐의 중 내란목적살인 예비음모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박지영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노 전 사령관 조사는 지난 6월 대검찰청에 고발돼 특검에 이첩된 내란목적살인 예비음모 혐의 관련"이라며 "조사 시 노 전 사령관은 혐의 관련 질문에 진술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1997년 대법원의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대한 내란 혐의 판례를 근거로 노 전 사령관에게 이미 기소된 혐의와는 별도로 살인 예비음모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대법원 판례는 내란죄와 내란목적살인죄를 명확히 구분했다. 대법원은 내란죄는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수단으로 하는 반면 내란목적살인죄는 '살인'을 수단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고 규정했다.

또 내란 실행 과정에서 폭동에 수반해 개별적으로 발생한 살인 행위는 내란 행위에 흡수돼 별죄를 구성하지 않지만, 특정인에 대한 살해가 의도적으로 실행된 경우에는 내란 행위에 흡수되지 않고 내란목적살인의 별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무차별적인 폭동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살인과 특정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실행한 살인을 법적으로 다르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내란목적살인죄는 형법 제88조에 규정된 범죄다. 내란의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경우 성립한다. 이 죄의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다. 예비 또는 음모만 해도 처벌 대상이 된다. 형법 제90조는 내란목적살인 예비음모죄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 경우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특검팀이 노 전 사령관에게 내란목적살인 예비음모 혐의를 적용한 것은 그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첩의 내용 때문이다. 앞서 경찰이 압수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는 주요 정치인과 진보 성향 인사들을 '수거 대상'으로 규정하며 'GOP(일반전초)선상에서 피격', '바닷속', '연평도 등 무인도', '민통선 이북' 등 이들에 대한 '처리 방안'이 구체적으로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수첩에는 구체적인 인명이 거명됐으며, 각 인물별로 '처리 방법'이 상세히 기술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러한 기록이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실제 살해 계획을 구체화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첩의 기록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특검보는 "예비음모 혐의는 상당한 법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라며 "수첩 하나만 가지고는 (혐의 성립이) 어렵고, 여러 가지 정황을 같이 검토해 판단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수첩 기록 외에도 당시 정보사의 움직임, 노 전 사령관의 지시 내역,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혐의 입증 여부를 판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내란목적살인 예비음모 혐의가 성립하려면 단순한 계획이나 구상을 넘어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 행위가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첩에 기록된 내용이 실제 실행 가능한 계획이었는지, 관련 조직이나 인력이 동원됐는지 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특검팀은 노 전 사령관이 계엄 당일 정보사 병력을 동원해 특정 인물들을 연행하려 했다는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사 소속 요원들이 계엄 당일 일부 정치인과 언론인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이러한 정황들이 수첩의 내용과 연결되는지 집중 수사하고 있다.

한편 특검팀은 '계엄 보고 직무 유기' 등 혐의와 관련해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을 지난 15일과 17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18일에는 2차 조사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조서 열람도 이뤄졌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계엄 관련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고도 대통령이나 관계 기관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특검보는 "2차 조사 때 준비한 질문이 다 소화되지 않아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관련 부분을 좀 더 보강한 뒤 추가 조사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계엄 선포 전후 국정원 내부에서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계엄 관련 정보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추가 조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인지 묻는 말에는 "피의자에 대한 신병 처리 및 기소 여부는 조사 후에 결정된다"며 "방침이 없다는 게 특검팀의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특검팀이 조 전 원장에 대한 추가 조사와 증거 확보 작업을 마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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