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포기했는데...기적처럼 쏟아져 나온 뜻밖의 '대반전 식재료' 정체
2025-10-2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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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위협 딛고 피어난 기적의 버섯
잿더미에서 피어난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
봄, 경북 북부를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 소나무 숲이 잿더미로 변하며 “이젠 송이도 끝났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불과 반년 뒤, 이 지역에서는 정반대의 기적이 벌어졌다. 산불 피해로 포기했던 송이버섯이 ‘역대급 풍년’을 맞은 것이다.

산림조합중앙회에 따르면 경북 영덕군의 올해 송이 거래량은 지난 19일까지 1만 2462kg(공판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572kg)보다 약 두 배 늘었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공판 가격 또한 22억 5414만 원으로 전년(17억 1629만 원)보다 30% 가까이 증가했다. 영덕은 13년 연속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송이가 거래되는 지역으로, 올해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인근 지역의 반전은 더 극적이다. 안동은 올해 들어 6537kg의 송이를 거래해 작년(1028kg)의 여섯 배를 기록했다. 청송도 1171kg에서 5937kg으로 다섯 배 이상 늘었고, 공판 금액은 2억 9941만 원에서 11억 9396만 원으로 4배 가까이 뛰었다. 산불 피해가 집중됐던 지역임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기적 같은 회복’이다.

임산물 당국은 올여름 이어진 기상 조건이 송이 생장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산불 직후 비와 기온이 적절히 유지되며 오히려 송이의 발생 환경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산불로 인해 일시적으로 토양 표면의 낙엽층이 줄고 통기성이 확보돼, 송이균이 뿌리내리기 좋은 조건이 형성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산불 피해를 비껴간 봉화군의 경우 올해 거래량이 2910kg으로 작년(422kg)보다 7배 넘게 늘었다. 산림조합을 통하지 않은 개인 간 거래까지 포함하면 실제 생산량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도 송이 작황이 예년보다 좋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희소성 높은 ‘가을 진미’가 오랜만에 풍년을 맞았다.
송이는 인공재배가 불가능한 순수 자연산 버섯이다. 해발 300~800m의 소나무 숲에서 배수가 잘되고 낙엽이 적당히 쌓인 토양, 그리고 일교차가 큰 가을날씨가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얼굴을 내민다. 특히 강원도와 경북 고지대에서 나는 송이는 향이 진하고 조직이 단단해 ‘최고급 송이’로 불린다. 영덕, 청송, 봉화, 울진 일대의 송이는 전국 미식가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프리미엄 식재료다.

송이의 진가는 그 향에 있다. 솔향이 코끝을 스치는 송이는 얇게 썰어 생으로 먹거나, 소금만 살짝 뿌려 구워 먹으면 특유의 풍미가 그대로 살아난다. 값비싼 만큼 송이밥이나 전골, 찌개 등으로 나눠 먹는 것도 인기다.
영양 면에서도 송이는 ‘귀한 보약’이라 불린다.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베타글루칸 등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면역력 강화와 노화 억제에 도움을 주며, 헤리세논과 에리타데닌 성분은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혈압을 안정시킨다. 자연이 선사한 가을 보물이자, 손에 넣기 어려운 건강 식재료다.
올봄, 모두가 포기했던 송이가 불탄 산을 딛고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자연은 스스로 회복의 길을 찾았다. 잿더미 속에서도 향기롭게 피어난 송이는 올해 가을, 우리에게 ‘대반전’이 무엇인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탄 숲에 다시 번진 솔향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