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평점 9.37 찢으며 '올해의 한국영화'로 불리고 있는 대반전 '작품'
2025-10-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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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신작
독립영화 한 편이 메이저 기대작들의 스포트라이트를 가르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로 윤가은 감독의 신작 '세계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의 주인'은 지난 22일 개봉 직후 관객 지표와 평단 반응에서 동시에 높은 점수를 얻으며, 영화팬들 사이에서 세계적 거장인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등을 제치고 '올해의 한국영화'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한국영화로 꼽힌다는 평들이 쏟아지고 있다.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24일 오후 2시 30분 기준 CGV 에그지수는 96%,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은 9.37점을 기록 중이다. 대작 중심의 시장 구도에서 보기 드문 역류다. 개봉 3일차 전후 시점에 이 정도 체감 평점이 나오려면, 관객 구전의 방향이 명확해야 한다. 특정 장르 팬덤의 쏠림이라기보다, 교실의 위계와 다수결의 압력을 경험해 본 범용적 기억이 작동하는 쪽에 가깝다. 독립영화라는 분류표가 접근성을 낮추는 편견을 불식시키는 흐름이다.
'세계의 주인'은 고등학생 이주인의 한 선택이 교실과 가정, 관계 전반을 흔들며 벌어지는 일련의 파장을 따라간다. 반장, 모범생, '인싸'로 불리는 그는 전교 서명운동에 홀로 동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다수에 기대온 공기 속에서 단 한 명의 이탈은 즉시 충돌을 낳는다. 설득과 반박이 말싸움으로 비화되고, 이후 익명의 쪽지가 그를 추궁한다. 인싸, 관종, 허언증 같은 낙인이 교실을 떠돈다. 영화는 이 질문으로 밀고 들어간다. "이주인, 뭐가 진짜 너야?"

윤 감독은 이전 작품 '우리들' '우리집'이 보여준 미시적 관찰을 유지하면서도, 이번엔 다수결의 압력과 '옳음'의 강요, 소문과 익명의 폭력, 성과 사랑을 둘러싼 10대의 실제 고민까지 스펙트럼을 넓힌다. 카메라는 인물을 밀착 추적하되 설명을 덜어내고, 관객이 감정 결을 스스로 수습하도록 시간을 준다. 과장된 드라마틱 대신 체감 가능한 흔들림을 축적하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개봉 전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존재감을 입증했다. 토론토국제영화제 플랫폼 부문, BFI 런던영화제, 바르샤바국제영화제, 핑야오국제영화제 초청. 핑야오에선 로베르토 로셀리니상 심사위원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가져갔다. 바르샤바에선 국제비평가연맹상 수상. 독립예술영화의 배급 통로가 좁아진 시기에, 영화제 라인업은 이 작품이 가진 보편 감수성을 먼저 검증한 셈이다.
경험이 많지 않은 신예 서수빈이 '세계의 주인' 중심을 떠안는다. 반장의 씩씩함, 사춘기의 호기심, 다수 앞에서의 떨림, 익명 질문이 남기는 잔흔을 빠르게 전환하지 않고 한 호흡으로 잇는다. 표정보다 호흡, 대사보다 머뭇거림이 먼저 보인다. 윤 감독이 말한 "완전히 젊은 에너지의 배우"라는 규정이 과장이 아니다. 장혜진은 엄마 강태선 역으로 서사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과거 상처의 결을 드러내는 과정에서도 과잉으로 떠밀지 않는다. 다툼과 화해 사이, 가족의 온도를 현실값으로 유지한다.

윤 감독의 카메라는 결정적 순간을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인물 내면이 무너지는 장면에선 거리를 좁힌다. 교실 잡음, 복도 발소리, 세차장의 물줄기 같은 생활 소리가 감정의 배경음을 대체한다. 음악은 절제돼 있고, 감정의 클라이맥스에서도 과도한 상징을 얹지 않는다. 세차장 장면은 이 영화의 태도를 요약한다.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묻어 있던 먼지를 씻고 다시 마주보는 과정. 회복을 선포하지 않고 회복의 가능성만 남긴다.
영화의 초점은 두 축이다. 하나는 소문과 익명, 다수의 동의가 만들어내는 규범의 속도. 다른 하나는 성과 사랑을 말하는 10대의 실제 언어. 작품은 '솔직함'이란 말 뒤에 숨은 폭력의 가능성과, 솔직함이 때로 누군가를 구하는 통로가 되는 역설을 동시에 포착한다. 다수결의 편안함과 소수의 불편함이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어떻게 교환되는지, 관객이 알고 있던 장면을 새로 보게 한다.

감독은 팬데믹 시기 "이게 마지막 영화일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밀어붙였다고 밝혔다. 작은 영화가 극장에 진입하는 난이도는 높아졌고, 영화제는 여전히 중요한 통로다. 이번 작품은 그 통로를 제대로 활용했다. 개봉 이전 해외 라인업을 타고 국내 관심을 환기하고, 개봉 주간 실관람 지표로 시장의 첫 반응을 확정했다. 독립영화의 표준 전략으로 기록될 법한 전개다.
동시기 거장 신작과의 비교 구도는 결과가 아니라 현상이다. 팬덤의 언어는 과장되기 쉽지만, 여기서 유효한 것은 수치와 장면이다. 높은 실관람 점수, 상영 내내 유지되는 감정의 밀도, 교실의 공기를 재현하는 배우들의 합. 이 세 가지가 관객의 선택을 설명한다. 블록버스터형 서사와 달리, 이 영화는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인과를 축적한다. 바로 그 방식이 2025년 한국 관객의 피로를 비껴간다.
영화 정보 한 눈에 체크!
제목 : '세계의 주인'
감독 : 윤가은
주요 출연 : 서수빈, 장혜진
러닝타임 : 119분
등급 : 12세 관람가
개봉일 : 10월 22일
핵심 수상·초청 : 토론토국제영화제 플랫폼 초청, 핑야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관객상,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

평단(씨네21 전문가 8인)의 별점(10점 만점)과 코멘트는?
정재현 [8점] 역동하며 내 이야기를 하겠다는 사랑 그리고 진실
이유채 [9점]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자연 [9점] 안전한 무균실에 보관되느니, 상처 가득한 진짜 내 세상에 있을래
김소미 [8점] 절망 대신 굳센 미소를 터득한 모든 삶의 '주인'들을 어루만진다
박평식 [7점] 관찰하고 경청하며 북돋우다
이용철 [6점] 이겨내고 꾸미다
김철홍 [8점] 익명의 쪽지를 받은 뒤에도 주인으로 남기 위해
김송희 [8점]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나다움은 내가 결정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