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의 진짜 무기는 ‘권력’이었다.. <궁정인 갈릴레오>가 바라본 과학혁명

2025-10-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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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를 ‘궁정인’의 관점으로 다시 봐야 하는 이유

갈릴레오 갈릴레이 / Shutterstock.com
갈릴레오 갈릴레이 / Shutterstock.com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흔히 세간에 ‘지동설’을 증명한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번역 출간된 책 <궁정인 갈릴레오>는 그가 사실 당대 권력의 중심에서 판을 설계한 치밀한 '전략가'였음을 보여준다.

16~17세기 유럽에서 우주의 원리를 탐구할 자격은 오직 철학자에게만 주어졌다. 수학자는 단순히 계산을 대신하는 기술자로 치부됐다. 당시만 해도 천동설은 철학과 종교가 쌓아올린 세계관 위에서 의심할 여지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앞서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금서로 지정됐을 정도였다.

수학자였던 갈릴레오 역시 지동설을 지지했다. 그는 직접 개량한 당대 최고 성능의 망원경으로 목성의 네 위성을 발견했고, 이를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메디치 가문에 헌정했다. 이를 계기로 갈릴레오는 ‘대공의 철학자 겸 수학자’라는 전례 없는 작위를 부여받았다.

이 작위는 갈릴레오에게 ‘수학자’를 넘어 ‘철학자’로서 우주를 논할 사회적 자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발판 삼아 태양 흑점 실험 또는 망원경 시연회 같은 일종의 ‘과학 공연’을 펼쳤다. 이는 학문적 증명의 과정이자, 청중을 설득하기 위한 사회적 퍼포먼스였다.

소요서가에서 출간된 ‘궁정인 갈릴레오’
소요서가에서 출간된 ‘궁정인 갈릴레오’

이탈리아 출신 학자 마리오 비아졸리의 <궁정인 갈릴레오>(소요서가 刊)는 이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한다. 1993년 출간돼 과학사 연구의 고전으로 평가받아온 이 책이 32년 만에 국내 처음으로 번역됐다.

<궁정인 갈릴레오>는 갈릴레오가 궁정을 기반으로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한다. 근대 과학의 탄생이 단순히 새로운 관측 도구나 이론의 등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식 생산자의 사회적 지위와 정당화 방식이 변화한 사건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근대 과학의 탄생이 단순히 새로운 이론이나 도구의 등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비아졸리에 따르면,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논증 이전에 그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회적 권위와 신분 상승이 필수적이었다. 즉, 지식 생산자의 사회적 지위 자체가 변하는 사건이 곧 과학혁명이었다는 통찰이다.

이 책의 분석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새로운 과학 이론이 순수한 논리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궁정인 갈릴레오>는 과학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식과 권력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과학사를 넘어 '지식의 사회학'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자료가 될 것이다.

home 허주영 기자 beadjade@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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