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샷 제안하고 막내 자처하고... 정의선 인간적 매력 빛난 '깐부 회동'

2025-11-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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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인간관계를 세계 비즈니스의 언어로 바꾼 정의선 회장

정의선(맨 오른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깐부치킨에서  젠슨 황(맨 왼쪽)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회동을 갖고 러브샷을 하고 있다. / 뉴스1(공동취재)
정의선(맨 오른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깐부치킨에서 젠슨 황(맨 왼쪽)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회동을 갖고 러브샷을 하고 있다. / 뉴스1(공동취재)

10월 30일 저녁 서울 강남의 깐부치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치킨과 맥주를 앞에 둔 셋은 글로벌 거물들답지 않게 격의 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흰 반팔 티셔츠를 입고 스스럼없이 막내를 자처한 정 회장이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거대 기업의 총수가 아니라 술자리에서 스스럼없이 건배를 외치는 동네 아저씨처럼 보였다.

정 회장은 이날 ‘치맥 회동’에서 가장 활발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맥주잔을 먼저 들며 “건배합시다”라고 외쳤고, 젠슨 황 CEO와 팔을 걸어 ‘러브샷’을 했다. 이 회장이 “치맥은 10 년 만인 것 같다”고 하자 “난 자주 먹는데요”라고 웃으며 받아치기도 했다. 셋 모두 딱딱하게 격식을 차리기보다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았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정 회장이 있었다. 주변 손님들이 환호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인사했고, 사진 요청에도 흔쾌히 응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0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의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뉴스1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0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의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뉴스1

옆자리에 있는 어린 소년이 “이재용 회장은 알아요. 근데 저분은 잘 몰라요”라고 말하자 정 회장은 잠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빠 무슨 차 타시니? 나는 그 차 만드는 아저씨야”라며 자신을 소개하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이에게 직접 악수를 청한 장면을 담은 영상과 사진이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치킨집 안의 공기는 예상보다 훨씬 유쾌했다. 황 CEO가 맥주잔을 들어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말하자, 정 회장은 “우리 셋이 깐부잖아요”라며 잔을 부딪쳤다. 회동의 주제는 AI 협력이나 반도체 전략이었을지 모르지만, 분위기만큼은 친구 사이의 자리와 다를 바 없었다. 황 CEO가 “오늘 식사는 누가 사나요?”라고 농담하자, 이 회장이 “오늘은 내가 쏠게요”라며 180만 원을 계산했다. 정 회장이 “2차는 제가 사겠습니다”라고 곧바로 화답했다. 실제로 정 회장이 2차를 계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분위기 조율자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을 주고받던 갑자기 일어나 "제가 러브샷을 제안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주위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그는 조용하고 절제된 이미지를 잠시 벗고 자연스러운 웃음과 농담으로 가게 안의 공기를 부드럽게 조율했다.

정 회장의 이런 모습은 이날 오전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지포스 25주년’ 행사에서도 확인됐다. 그는 무대 위에서 “제가 생긴 건 (나이가) 좀 들어 보이지만 두 분 다 형님이시죠”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로 정 회장은 1970년생(55세)으로, 1963년생 황 CEO와 1968년생인 이 회장보다 젊다.

정의선(왼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서 인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뉴스1(공동취재)
정의선(왼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서 인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뉴스1(공동취재)

정 회장은 행사 중 “아이가 ‘리그오브레전드(LoL)’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같이 봤다”며 “그 안에도 엔비디아 칩이 들어 있더라”고 말했다. 그가 자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 한마디만으로 현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AI 칩, 자율주행, 게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정 회장은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는 경영자인 동시에 딱딱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 줄 아는 경영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정의선(맨 오른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함께 '치맥' 회동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공동취재)
정의선(맨 오른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함께 '치맥' 회동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공동취재)

이 같은 정 회장의 태도는 그의 평소 경영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는 그를 ‘듣는 리더’라고 부른다. 사내 타운홀 미팅에서 직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고, 임직원들과 식사 자리를 자주 갖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들은 “정 회장은 명령하기보다 대화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이번 깐부치킨 회동에서도 그의 리더십이 엿보였다는 말이 나온다.

APEC 기간 내내 이어진 정 회장의 인간미는 다음날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났다.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자마자 정 회장은 “이번 관세 인하 관련해 너무 감사드린다. 정부분들이 잘해주셔서 제가 큰 빚을 졌다”고 말했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현대차·기아의 대미 자동차 관세가 낮아진 데 대해 한껏 사의를 표한 것. 그렇더라도 기업 총수가 대통령 앞에서 먼저 감사 인사를 건넨 것은 이례적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기업이 국가에 고맙다고 말하는 건 쉽지 않은데, 그런 말을 들으니 자부심이 생겼다”고 했다.

재계에선 황 CEO와의 회동은 정 회장의 ‘실용’과 ‘인간미’를 동시에 드러낸 자리였다는 말이 나온다.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자율주행, 로봇, AI 반도체 등 현대차의 미래 전략에 큰 의미가 있다. 회동에서 정 회장은 이런 기술과 함께 ‘관계’를 강조했다. 황 CEO에게 ‘깐부’라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한 장면은, 한국식 인간관계를 세계 비즈니스의 언어로 바꾼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치맥 회동’은 기업의 수장으로서 냉철함과 함께 인간적인 온기를 겸비한 정 회장의 매력이 드러난 자리였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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