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성 환자 9배 급증... 그들에게 축복이자 저주인 이 재능
2025-11-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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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환은 주의력 결핍이 아니라 주의력 조절의 문제”

시험 전날 밤 ‘드래곤볼’을 보기 시작한 두 사람은 결국 해가 뜰 때까지 만화를 끊지 못했다. 이들은 “다음날 시험인데 만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의 현실이 담겨 있었다.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에 공개된 영상 ‘ADHD들의 저주이자 축복인 이 재능’은 이처럼 평범한 에피소드로 시작해, ADHD가 가진 집중력의 역설적인 두 얼굴을 짚어냈다. ADHD를 앓는 의사들이 하는 말이 ADHD에 대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상에 등장한 정신과 전문의들은 ADHD가 단순히 ‘주의력이 부족한 병’이 아니라 ‘주의력을 조절하지 못하는 장애’라고 말한다. 즉, 흥미로운 자극을 만나면 충동적으로 깊게 빠져드는 반면, 지루하거나 반복적인 일에는 집중을 유지하기 어렵다. 한 의사는 “ADHD는 주의력 결핍이 아니라 주의력 조절의 문제”라며 “자극이 강한 환경에서는 압도돼서 주의를 분산하거나 전환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실제 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2021년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517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몰입 빈도와 지속 시간, 몰입 후 스트레스 등을 조사한 결과 ADHD 참가자들은 일반인보다 더 자주, 더 강하게 ‘과몰입’을 경험했다고 한다. 특히 게임, 예술, 창작 활동 같은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분야에서 그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주의력 점수보다 충동성과 더 깊은 연관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는, 이들의 몰입이 단순한 집중력과는 다른 뇌의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영상 속 의사들은 자신들의 사례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한 명은 “초등학생 시절 책을 읽다가 청소시간이 시작된 것도 몰랐다”며 “주변 자극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의사는 “공부가 지루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보상 시스템을 만들어 몰입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3 때 공부 일정표를 짜서 한 단원을 끝내면 ‘스타크래프트’ 한 판을 하는 식으로 시간을 나눴다”며 “이 방식 덕분에 집중력이 더 높아졌다”고 했다.
이처럼 과몰입은 때로 강력한 집중력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영상에서는 “ADHD인데 종일 게임만 하고 유튜브만 본다”는 시청자 댓글이 소개됐다. 이에 대해 한 의사는 “과몰입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수면이 부족해지고, 인간관계에서도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ADHD 환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거나 약속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고, 이는 대인관계의 마찰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과몰입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약물치료와 함께 ‘시간 구조화’와 ‘자기 인식 훈련’을 강조했다. 하루 계획을 리스트로 작성하고 타이머를 이용해 시간을 쪼개 쓰는 방식이다. 한 의사는 “나도 아침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카카오톡 메모로 보내 두고, 하루에도 여러 번 체크한다”며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전략으로는 ‘신호등 시스템’이 소개됐다. 초록불은 ‘집중이 잘되는 상태’, 노란불은 ‘시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는 신호’, 빨간불은 ‘이미 몇 시간을 지나쳐 몰입에 갇힌 상태’를 뜻한다. 이 방법을 통해 자신이 어느 시점에서 몰입에 빠지는지 인식하고, 스스로 멈출 타이밍을 찾는 훈련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챙김 명상’ 역시 반복적으로 언급됐다. 한 의사는 “예전에는 밤새 만화를 보다가 새벽에 대본을 쓰곤 했는데, 최근 몇 년은 그런 일이 없다”며 “꾸준히 명상과 호흡 훈련을 하면서 과몰입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또 “매일 10분씩 마음챙김 호흡을 하면 자기 인식 능력과 주의 조절 능력이 향상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먹을 때, 걸을 때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인식하려고 노력한다”며 “이런 훈련이 전두엽 기능을 강화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두 의사는 “ADHD의 과몰입은 단점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재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역사상 많은 창의적 인물들이 ADHD적 성향을 가졌고, 그들의 몰입이 혁신을 낳았다는 연구도 있다. 영상은 “이 능력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환경을 잘 세팅해서 장점으로 살리는 방법을 찾자”는 말로 마무리됐다.
“과몰입은 조절되지 않으면 파괴적이지만 방향만 잡히면 창의력과 성취를 폭발시키는 힘이 된다.” ADHD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 문장은 저주이자 축복처럼 들린다.
한국에서 ADHD 진단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 간 ADHD 진료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ADHD로 진료받은 사람은 26만334명이다. 이 중 20세 이상 성인 환자가 12만2614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성인 ADHD 환자가 10만명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30대 여성의 급증이 두드러진다. 2020년 2325명이던 30대 여성 환자는 지난해 2만624명으로 8.9배 폭증했다. 같은 기간 20대 여성은 5.7배, 40대 여성은 7.6배 늘었다. 전문가들은 “여성은 남성보다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고, 병원 방문에 대한 거부감이 낮다”고 분석했다. 반면 남성은 “취약성을 드러내는 걸 어려워하다 보니 극단적으로 힘들어진 뒤에야 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성인 ADHD 진료비도 급증했다. 지난해 관련 진료비는 1080억5469만원으로 처음 1000억원을 돌파했다. 2020년에 비해 5.7배 늘어난 수치다.
ADHD는 더 이상 일부 아이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1~9세 아동 중 정신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인원은 9만3655명으로, 4년 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0세 이하 ADHD 약물 처방 인원도 2021년 2만7865명에서 지난해 5만3053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