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운영자가 계약·환불 주도… 바지사장 명의 뒤 숨은 부동산 개발 실태
2025-11-0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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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증도 무용지물”… 실질운영자 전면에, 법적 대표는 다른 사람
세무조사·형사처벌 가능성도… 명의 대여 회사에 경고등

[세종=위키트리 양완영 기자] 최근 지방 건설경기 불황과 부동산 거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일부 부동산업자들이 법적·재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법으로 '바지사장' 명의 회사를 내세우는 방식의 기획사기 수법이 잇따르고 있다.
실질 운영자는 전면에 나서 계약을 유도하고 환불 약속까지 하지만, 실제 계약서와 사업자등록은 명의만 빌린 제3자의 이름으로 작성돼 피해자들이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김씨는 최근 한 부동산 개발회사로부터 "○○지역 개발 사업을 ○○년 ○월까지 완료하겠다"는 설명을 듣고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은 해당 법인의 실질 운영자로 알려진 A씨와 직접 진행됐으며, A씨는 개발 일정과 환불 보장 등을 강조하며 계약을 유도했다. 이에 김 씨는 향후 개발이 지연되거나 이행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A씨로부터 환불 약속을 받고 공증사무소에서 변제 공정증서까지 작성했다.
그러나 예정된 개발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고, 환불 기한이 지나도록 약속된 금액은 반환되지 않았다. 김 씨는 현재까지 환불을 받지 못한 상태다. 해당 법인의 등기상 대표는 B씨로 등재돼 있었지만, 김 씨는 계약 과정에서 B씨를 전혀 알지 못했고, 모든 실무는 A씨가 도맡아 진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B씨 측은 “법적으로 대표는 맞지만, 사업 실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계약 불이행을 넘어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본다. 형법 제347조는 타인을 기망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행위를 사기죄로 규정하며, 형법 제352조는 피해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실행 단계에 이른 경우 사기미수로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질 운영자인 A씨가 허위 또는 기망적 정보를 바탕으로 계약을 유도하고 금전을 수령했다면, 사기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법 제24조에 따라 명의를 빌려준 자(B씨) 역시 명의대여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계약상 발생한 손해에 대해 민사상 공동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도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실제 계약 과정에서 누구와 거래했는지, 환불 약속을 누가 했는지, 법인과 그 인물 간의 관계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무당국 또한 이와 같은 사례에 대해 “실질 운영자가 제3자의 명의를 빌려 사업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자금을 수취한 뒤 이를 세무신고 없이 유용하거나 은닉한 정황이 확인될 경우 조세범처벌법 및 명의위장 거래로 형사고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특히 자금 흐름이 불투명하거나 법인이 허위 서류를 통해 금전 수취를 지속한 경우, 세무조사와 동시에 고발 조치가 병행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실질 운영자와 명의자가 분리된 구조는 피해자에게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계약상 보호를 받기 어렵게 만드는 전형적인 위험 사례로 지적된다. 특히 계약 당사자가 실제 대표이사인지 여부, 명의자와 실무자의 역할 관계, 회사의 실체 여부 등을 사전에 명확히 확인하지 않을 경우, 이와 유사한 피해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사업자등록증이나 등기부등본만 보고 안심하지 말고, 계약을 안내하거나 환불을 약속하는 사람이 실제 법적 책임이 있는 인물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증서가 있더라도 자동으로 돈이 환불되는 것은 아니며, 강제집행이 가능한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계약 전부터 법률 검토를 받는 것이 결국 피해를 예방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 씨는 현재 A씨와 B씨를 상대로 민사소송 및 형사고소를 준비 중이며, “처음부터 A씨만을 믿고 계약을 진행했는데, 이제 와서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 말이 안 된다”며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법적 대응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