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근로자” 한국 최초 '아이돌 노조' 생긴다
2025-11-06 22:27
add remove print link
“정신건강·노동권 보호, 더는 미룰 수 없다”
아이돌 산업의 화려한 무대 뒤,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정신적 고립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아이돌과 대중문화예술인을 위한 노동조합 설립이 속도를 내고 있다.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서민선 더불어민주당 청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가수 등 현직 활동자 10여 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준비위원회는 노조 출범 전 단계로, 내부 조직 구성과 대외 홍보 활동을 진행 중이다.

◆ 문체부에 실태 조사 및 제도 개선 요청
준비위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아이돌 및 대중문화예술인 정신건강 관리·악플 대응 실태 조사 및 제도개선 요청서’를 공식 발송했다. 요청서에는 악성 댓글로 피해를 입은 아티스트를 위해 소속사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법적 조치나 고소 지원이 피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조사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준비위는 각 소속사가 정신건강 관리 매뉴얼을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지도 점검해 달라고 요구했다. 매뉴얼이 존재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문체부 차원에서 표준 지침을 마련하고 의무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위험 징후 발생 시 보호자 통보, 의료기관 연계, 상담기록 관리 등 세부 대응 체계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 과로와 정신질환, ‘보이지 않는 산업재해’
아이돌들이 장시간 연습과 해외 활동을 반복하며 근골격계 질환이나 정신질환을 겪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됐다. 준비위는 “일부 소속사는 연애나 대외교류, 의료기록까지 통제하며 아티스트를 고립시키고 있다”며 “이 같은 환경은 명백한 정신적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아티스트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위기대응 매뉴얼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돌 노동
현행 문화체육관광부 표준전속계약서에는 예술인을 ‘업무용역을 수행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사실상 어렵다. 준비위는 “아이돌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 연습실과 숙소 등에서 소속사의 지휘·감독 아래 일하고, 일정 금액을 지속적으로 지급받는 근로형태를 가진다”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준비위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하이브의 ‘으뜸기업’ 인증 취소 요청 진정서를 제출했다. 또 한국저작권보호원에는 소속사들의 심리지원 매뉴얼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업계 전반의 인권침해 문제를 개선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 “아이돌, 여전히 4대 보험 사각지대에”
준비위는 아이돌이 법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각종 보호 제도의 혜택에서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산재보험 미적용, 4대 보험 미가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미적용 등이 대표적이다. 준비위는 “아이돌 사망 이후에도 소속사가 노동부에 신고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며 “이는 은폐 행위로 볼 수 있어 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아이돌 노조 설립 움직임은 단순한 조직 결성이 아니라,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정신적 압박, 그리고 불투명한 계약 구조 속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아온 문제들을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준비위는 “노조 설립은 단순한 권리 투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구축”이라며 “예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