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개봉 1년 만에 넷플릭스 ‘1위’ 오른 대반전 19금 ‘한국영화’
2025-11-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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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만든 영화의 기적, 천금같은 재평가
개봉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영화 ‘더 킬러스’가 넷플릭스에서 기적 같은 역주행을 써내려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극장 개봉 후 조용히 사라졌던 이 작품은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공개 직후 국내 톱10에 진입하더니 '더 킬러스'는 마침내 한국 영화 부문 1위까지 오르며 놀라운 반전을 이뤘다.
1년 만의 역주행, 19금 영화의 반란 ‘더 킬러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1927년 단편소설 ‘살인자들’을 모티프로 제작된 범죄 스릴러 앤솔로지 영화다. 국내에선 개봉 당시 흥행 성적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넷플릭스 공개 후 작품성을 새로이 인정받으며 1위의 정상 자리까지 차지했다. 이는 OTT 이용자들이 작품의 실험성과 다양성을 늦게나마 발견한 결과라고 분석된다.
‘앤솔로지’ 형식으로 완성된 여섯 개의 살인자 이야기
‘더 킬러스’는 이명세, 장항준, 노덕, 김종관, 윤유경, 조성환 등 여섯 감독이 참여한 앤솔로지 영화다. 앤솔러지 영화란 여러 작가나 감독이 각기 다른 단편 작품들을 주제나 시대 같은 하나의 기준 아래 모아 한 편의 영화처럼 구성한 형식의 작품을 의미한다.
'더 킬러스'는 극장 개봉 당시에는 이명세·장항준·노덕·김종관 감독의 네 편으로 구성됐지만, OTT 버전에서는 두 편이 추가된 확장판으로 공개된 것으로 전해졌다. 각 감독은 동일한 원작을 공통된 모티프로 삼아 각기 다른 시대, 인물, 공간을 배경으로 한 여섯 개의 살인자 이야기를 완성했다. ‘살인자들’이 단 한 장면의 식당을 배경으로 긴장감을 쌓는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한 서사를 보여준다면, ‘더 킬러스’는 그 세계를 확장해 인물들의 내면, 사회적 맥락, 도덕적 경계선을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첫 번째 이야기, 김종관 감독의 ‘변신’
김종관 감독의 ‘변신’은 등에 칼이 꽂힌 채 의문의 바에서 깨어난 남자(연우진)가 비밀스러운 바텐더(심은경)가 건넨 음료를 마시며 점차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죽음과 부활, 인간의 본성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전개된다. 특유의 감각적 영상미와 절제된 대사가 헤밍웨이 원작의 정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을 받는다.
두 번째 이야기, 노덕 감독의 ‘업자들’
노덕 감독의 ‘업자들’은 청부살인을 하청에 하청으로 넘기다 결국 3억 원짜리 의뢰를 단돈 300만 원에 떠맡게 된 세 명의 허술한 살인 청부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예상치 못한 타깃을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냈다. 현실 풍자와 웃음을 동시에 담아낸 작품으로, 비극과 코미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심은경은 이 작품에서 납치된 인물로 등장해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강렬한 연기를 펼쳤다.

세 번째 이야기, 장항준 감독의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1979년, 외진 선술집에서 네 명의 남자가 한 살인자를 기다린다. 살인자의 단서는 오직 ‘왼쪽 어깨의 수선화 문신’. 장항준 감독 특유의 탄탄한 내러티브와 미스터리한 전개가 결합된 작품으로,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심리전이 돋보인다. 배우 오연아가 매혹적인 선술집 주인으로 등장하며, 이 작품은 4편 중 심은경의 비중이 가장 적지만 전체 분위기를 지탱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네 번째 이야기, 이명세 감독의 ‘무성영화’
‘무성영화’는 범법자와 추방자들이 모여 사는 지하세계 디아스포차 시티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 두 명의 킬러가 신원 미상의 타깃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이명세 감독의 대표작 ‘형사 듀얼리스트’, ‘M’에서 볼 수 있던 감각적인 이미지 중심 연출이 이번 작품에서도 극대화됐다. 대사보다 시각적 연출과 음악이 중심이 되는 작품으로, 일부 관객에게는 난해하지만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섯 번의 얼굴, 배우 심은경
‘더 킬러스’ 또 다른 중심에는 배우 심은경이 있다. 그는 여섯 개의 이야기에 모두 등장하며,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때로는 냉정한 살인자, 때로는 피해자, 혹은 관찰자로서 존재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는다. 2019년 일본영화 ‘신문기자’ 이후 일본 활동에 집중했던 그녀가 오랜만에 한국 프로젝트로 돌아온 점도 주목받고 있다. 평단에서는 심은경의 다층적 연기력 덕분에 여섯 개의 작품이 하나의 큰 서사처럼 이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험정신으로 증명한 한국영화의 확장성
‘더 킬러스’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중간 지점을 찾으려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실험이다. 감독들은 공통의 주제를 공유하되, 장르·톤·시각을 전혀 다르게 가져가며 ‘하나의 원작, 여섯 개의 해석’을 완성했다. 이는 한국영화가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결국 이 작품의 역주행은 단순한 흥행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실험정신이 관객에게 통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