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마니아들이 꿈에서나 상상해보던 대형 이벤트가 펼쳐진다

2025-11-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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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둑 전설 사천서 특별 대국

조훈현(왼쪽) 9단과 이창호 9단. / 뉴스1
조훈현(왼쪽) 9단과 이창호 9단. / 뉴스1
바둑판 위에서 펼쳐진 한 시대의 전설이 경남 사천에서 재현된다. 한국 바둑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전설의 사제지간인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이 특별 대국을 통해 바둑 팬들과 만난다.

사천시는 '2025 사천 방문의 해'를 기념하고 바둑과 관광을 결합한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두 기사의 특별 대국을 오는 17일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대국 전날인 16일에는 정동면 사천시립도서관 대강당에서 미디어데이와 팬 사인회가 마련돼 바둑 팬들과 두 기사가 인터뷰, 질의응답, 사인, 사진 촬영 등을 한다.

본 경기가 열리는 17일에는 사남면 항공우주체험관에서 단판 승부 형식으로 비공개 촬영이 진행된다. 대국은 각자 30분, 초읽기 40초 5회의 제한 시간으로 진행된다. 녹화된 경기는 이달 중 바둑TV와 유튜브 채널에서 방송된다.

이번 대국은 한 시대를 풍미한 두 바둑 영웅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모은다.

조 9단은 1953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9세 7개월에 세계 최연소로 프로에 입단한 뒤 일본 세고에 겐사쿠 문하에서 바둑을 수련했다. 1989년 제1회 응씨배 세계 프로 바둑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한국을 세계대회 우승국으로 이끌었고, 이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4년에는 후지쯔배, 동양증권배, 응씨배 우승으로 세계 최초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는 세계 바둑계 최초 국제기전 그랜드슬램 달성, 국내 최초 9단, 통산 타이틀 획득 160회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70~1990년대 한국 바둑을 지배한 황제이자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전신'(戰神)이라는 별명답게 날렵한 전술과 공격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기풍으로 유명하다.

이 9단은 1975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84년 당시 10세의 나이로 조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갔다. 1986년 만 11세 1개월에 입단해 조 9단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웠다. 1989년 KBS 바둑왕전에서 14세의 최연소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1992년 동양증권배에서 15세 6개월에 최연소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다. 통산 140회 타이틀 획득, 세계대회 21회 우승 등을 달성하며 스승의 뒤를 이은 절대 제왕으로 불린다.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극도로 신중하고 침착하게 수를 두며 빈틈없는 수비와 계산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기풍을 구사한다.

스승과 제자는 1988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69번의 타이틀 매치를 벌였다. 이는 세계 바둑 역사에서도 유례없는 사제 경쟁이었다. 68번의 타이틀전 총 대국 전적은 이 9단이 162승, 조 9단이 97승을 거뒀다. 통산전적은 이 9단 기준 314전 195승 119패(승률 62.1%)다.

특히 이 9단은 조 9단에게 반집승을 20번이나 거뒀는데, 이 중 17번이 타이틀전에서 올린 반집승이었다. 이로 인해 이 9단은 '신산'(神算), 즉 신의 경지에 이른 계산력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두 사람의 사제 대결은 영화 '승부'로도 제작됐다. 이병헌이 조 9단 역을, 유아인이 이 9단 역을 맡은 이 영화는 1990년대 초 국내 바둑계를 들썩이게 했던 사제 간 명승부를 다뤘다. 영화는 1990년 벌어진 29기 최고위전에서 16세 이창호가 스승 조훈현을 꺾고 타이틀을 차지한 첫 사제 대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긍정적인 평을 내리며 개봉월 극장가 영화 중 가장 높은 관객 동원률을 기록했다.

영화는 조 9단이 제1회 응씨배 바둑 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세계 최고 바둑 대회에서 국내 최초 우승자가 된 조 9단이 전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바둑 신동이라 불리는 이창호를 제자로 맞는 과정과 제자와 한 지붕 아래에서 먹고 자며 가르친 지 수년 만에 벌어진 첫 사제 대결에서의 충격적 패배,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렸다.

조 9단은 영화 시사회에서 "바둑에 대한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싶어 극중 실명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병헌의 연기를 보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며 "영화를 보니 울리는 대목도 있고 가슴에 느껴지는 게 있어 재밌게 봤다"고 전했다.

시는 스승과 제자의 세월을 넘어선 명승부가 '사천 방문의 해'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박동식 시장은 "이번 대결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이벤트로 사천의 문화와 관광을 전국에 알리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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