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비싸지려고…벌써 ‘생산량 급감 예고’에 초비상 걸린 국민 식재료
2025-11-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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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가 부른 양파 생산의 위기
농가의 한숨, 양파 재배 어려움 가중
경북에서도 월동 작물인 양파 아주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예년에 비해 열흘 이상 늦은 데다, 생산량 감소 우려까지 벌써 나오고 있다. 기후 불안이 반복되면서 한 해 농사 시작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되는 것이다.

지난 8일 대구 MBC 보도에 따르면, 찬 기운이 감도는 이른 아침부터 들녘은 분주했다. 수십 명의 작업자들이 일렬로 움직이는 자리마다 푸른 모종이 심어지며 들판에 생기가 돌았다. 지난 9월 초 씨앗을 뿌려 정성껏 키운 양파 어린 모를 아주심기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 일정이 예년에 비해 열흘에서 보름가량 늦어졌다. 가을 내내 이어진 비 때문이다.
오세진 양파생산자협회 김천시지회 회장은 “9월부터 10월에 가을장마가 길어져서 잦은 비로 인해서 육묘 상태도 안 좋아졌고, 봄 논 준비도 비가 많이 오다 보니 논이 질척해서 논갈이하는 데 준비 기간이 좀 길어져서, (아주심기가) 예년보다 10일 정도 늦어졌다”고 말했다.
파종 초기에는 날씨가 좋아 싹이 잘 텄지만, 이후 장마성 비가 이어지면서 무름병 등 병해가 발생했다. 농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어린 모의 30% 정도가 말라 죽거나 썩어버린 것으로 전해진다. 심을 수 있는 모의 수가 줄면서 전체 재배 면적도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오 회장은 “제 경우로 봐서는 육묘 상태가 70~80%밖에 안 된다. 육묘 상태에서 심을 수 있는 게. 그러다 보면 심는 면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내년에 양파 수확량이 좀 떨어지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가들은 겨울이 다 되어서야 아주심기를 진행하는 상황에 놓여, 월동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오세윤 남김천농협 조합장은 “늦게 심으면 뿌리 활착률, 월동하는 데 많은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올해는 정식 시기가 늦은 만큼 겨울 월동 관리 잘하는 방법은 영양제라든지, 부직포를 덮으면 월동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김천 지역의 양파 수확 시기는 2026년 6월이다. 아직 수확까지 반년 이상 남았지만, 한 해 농사 초입부터 이상기후의 직격탄을 맞으며 이미 ‘생산량 급감’이 예고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올해 초 경남 양파 주산지에서도 현실이 됐다. 지난 6월, 경남 창녕 일대는 생육기 이상저온으로 작황 부진을 겪었다. 농민신문에 따르면, 창녕에서 1만9835㎡(6000평) 규모로 양파를 재배하는 박 모 씨는 “평년에는 3.3㎡(1평)당 25∼28㎏을 얻었지만 올해는 18㎏밖에 거두지 못했다”며 “생산량도 줄었지만 구 지름 10㎝ 이상인 특상품이 감소하는 등 품질도 떨어져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품위 저하도 수치로 확인된다. 창녕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 따르면 구 지름 6㎝ 이하의 하품 비율이 예년에는 1%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15%까지 급등했다. 올해 생산량과 품질 저하의 원인은 명확하다. 3∼4월 이어진 이상저온 현상 때문이다. 양파는 4∼5℃ 이하에서는 생장이 느려지거나 멈추는데, 한창 커야 할 봄철의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현저히 낮았다.
이미숙 농경연 전문연구원은 “지난해 말 잦은 비로 아주심기가 늦어진 것과 경남 양파 주산지들의 생육기 기온이 유독 낮았던 상황이 겹치면서 작황이 나빠진 것 같다”면서 “전남과 경남의 날씨가 이렇게 차이가 난 것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상기후가 반복되며 ‘기상 리스크’가 현실화된 셈이다.

양파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국민 식재료다. 볶음, 국, 찌개, 무침 등 어떤 요리에 넣어도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단맛과 감칠맛을 더한다. 익히면 부드럽고 달콤해지고, 생으로 먹으면 아삭하고 매운맛이 감칠맛을 준다. 그만큼 가정식, 분식, 한식당, 심지어 고급 요리까지 어디서나 쓰이는 ‘숨은 주연’이다.
한국인에게 양파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맛의 뿌리’다. 된장찌개 속 한 조각의 양파, 고기 구울 때 곁들이는 생양파, 김밥 속 단맛을 내는 양파볶음까지, 거의 모든 음식의 맛 균형을 잡아준다. 계절 제약이 적어 사계절 내내 소비되며, 지역마다 단양파·적양파 등 다양한 품종이 재배돼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 되기도 한다.
영양적으로도 양파는 완전식품에 가깝다. 퀘르세틴(quercetin)이라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혈액순환을 돕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알리신은 세균 번식을 억제하고 면역력 향상에 기여하며,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건강에도 좋다.

이처럼 양파는 맛과 영양, 건강을 두루 갖춘 식재료지만,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이 이어지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경남에 이어 경북까지 ‘늦은 심기’와 병해 피해가 겹치자, 내년 초 양파 가격 상승 가능성도 점쳐진다.
‘국민 식재료’라 불리는 양파의 가격 변동은 곧장 서민 식탁으로 이어진다. 밥상 물가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양파의 작황이 다시 흔들리면서, 소비자와 농가 모두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결국 양파 한 망의 가격에는 단순한 농산물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한국인의 식탁을 지탱하는 기본의 가치이자, 이상기후 시대 농업이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