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사람들 빼곤 모두 불편..." 마라톤 대회 인기에 가려진 그림자
2025-11-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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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열풍’ 속 마라톤 대회 13배 급증… 교통 통제·소음에 시민 불만 폭발
최근 러닝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전국 곳곳에서 마라톤 행사가 봇물 터지듯 열리고 있다. 하지만 행사 증가에 따른 교통 통제, 소음, 쓰레기 문제로 시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대회 개최를 조정하고, 지역사회와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9일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는 총 254회로, 참가 인원은 100만명을 넘었다. 2020년 19회에 불과했던 대회 수는 2021년 49회, 2022년 142회, 2023년 205회로 급격히 늘었다. 불과 4년 만에 13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러닝 열풍과 함께 건강한 여가를 즐기려는 인구가 늘어난 덕분이지만, 대회 코스 주변에 사는 시민들에게는 교통 통제와 소음, 쓰레기 등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버스를 너무 오래 기다렸다”, “코스 근처 상점이 소음 때문에 문을 닫았다”, “행사 뒤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불만이 잇따랐다.

◆ 상인들 “영업에 심각한 지장”… 항의 집회까지
지난 4월에는 마라톤 개최에 반대하는 상인들의 집회까지 열렸다. 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시장 상인들은 “반복된 마라톤 교통 통제로 영업에 심각한 지장을 받고 있다”며 한 언론사가 주최한 마라톤 코스 앞에서 항의했다. 이들은 “대회가 열릴 때마다 손님이 끊기고 배달 차량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일부 지역에서는 마라톤이 ‘시민 축제’가 아니라 ‘불편 행사’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대회가 주말 오전 도심 주요 도로를 장시간 점유하면서, 출근길이나 상가 방문, 대중교통 이용에 차질이 생긴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 참가비는 수십억 원… 경찰 인력은 세금으로 투입
마라톤 대회는 주로 언론사나 스포츠 기업 등이 주최하며, 참가비와 기업 협찬으로 수익을 얻는다. 참가비는 1인당 7만~8만원 수준으로, 참가 인원 규모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 주최 측으로 들어간다. 일부 수익이 공익사업에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대회 운영과 주최 측의 수익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공공 인력과 시설이 동원되지만 주최 측이 별도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3년 동안 열린 807회의 마라톤 대회를 위해 경찰 인력 3만6212명이 투입됐지만, 교통 통제 비용은 전액 세금으로 충당됐다. 경찰 관계자는 “공익적 목적의 행사로 통제를 지원할 뿐, 주최 측에서 별도로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시민과 지역이 함께 숨 쉴 수 있는 ‘러닝 문화’ 필요
러닝 인구의 증가와 건강한 여가문화 확산은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마라톤 대회가 진정한 ‘도시 축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민의 일상과 공존할 수 있는 운영 방식이 필수적이다. 교통 통제 구간을 최소화하고, 주민과 상인에게 충분히 사전 고지하는 한편, 대회 후 쓰레기 정리와 환경 관리까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공공 인력의 투입이 불가피하다면 주최 측이 일정 부분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회 주최의 책임과 사회적 합의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러닝 축제’는 시민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로 남을 수 있다.
건강을 위한 달리기가 모두의 피로가 되지 않기 위해, 이제는 ‘함께 달리는 사회적 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