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바다로 둘러싸였는데 왜 '생선'을 안 먹는 걸까… 결정적 이유

2025-11-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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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초까지 먹는 한중일과 비교되는 유럽

그리스 / 픽사베이
그리스 / 픽사베이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이름만 들어도 바다 냄새가 느껴지는 나라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유럽에서는 해산물이 식탁에 거의 오르지 않는다. 대형마트의 생선 코너도 작고 식당 메뉴에서도 해산물은 한쪽 구석에 밀려 있다. 해초를 먹지 않는 건 물론이고 생선 요리조차 몇 가지의 단조로운 방식으로만 조리된다. 지역마다 수백 가지인 고기 요리에 비해 참 빈약하기 짝이 없다.

'지식 브런치' 유튜브 채널이 9일 게재한 '유럽인은 왜 생선을 즐기지 않을까?'란 제목의 영상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아시아의 동쪽 끝으로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한국, 일본, 중국의 도시에서는 생선이 일상이다. 날로 먹거나 말리거나 발효하거나 국물로 끓여내기도 한다. 심지어 해초까지 요리의 재료가 된다. 같은 바다를 두고도 식탁 풍경이 이렇게 다르다.

영국 해변 / 픽사베이
영국 해변 / 픽사베이

유럽 연합의 공식 통계 기관인 유로스타트의 자료에 따르면 참치 어종이 전체 어패류 소비량의 약 44%를 차지한다. 참치가 13%, 연어가 11%, 새우·대구·알래스카 폴락이 각 7%씩이다. 그 외 청어, 정어리, 오징어, 홍합, 도미 정도가 추가되지만 전체 비중은 미미하다. 바다의 다양성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우리가 즐기는 김이나 미역, 다시마 같은 해초류도 잘 먹지 않는다. 유럽에 해초는 거의 자라지도 않고 바다 냄새가 심하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다. 그래서 유럽에서 해초는 오랫동안 식재료가 아닌 비료나 사료, 약재로만 사용됐다. 최근 들어 아시아 식문화의 영향으로 이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는 있지만 일반적이진 않다.

대륙을 비교해 보면 더 확연해진다. UN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 수산물 소비의 약 3분의 2가 아시아에서 이뤄진다. 인구 비중을 고려하더라도 이 지역의 해산물 소비 규모가 압도적이라는 뜻이다. 이 중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소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유럽과 북미, 오세아니아 전체를 합한 서구 세계가 아시아 하나보다 생선을 훨씬 적게 먹는 셈이다. 이렇듯 유럽은 풍요로운 해안을 가졌지만 먹을거리로서의 바다는 놀라울 만큼 단출하다.

유럽의 식탁에서 바다가 멀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시작은 바다 자체다. 유럽 북부의 대서양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불친절한 바다였다. 거칠고 차갑기로 악명 높다. 북대서양의 겨울 평균 파고는 5m를 넘고 폭풍이 몰아칠 때는 20m 이상으로 치솟는다. 바람은 시속 60km를 넘나들고 파도는 사방에서 몰아친다. 해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수심이 급격히 깊어져 조업이 어렵고 조류 방향도 종잡을 수가 없다. 이 냉혹한 바닷속에는 대구, 청어, 볼락 같은 냉수성 어종이 주로 산다. 종류는 많지 않지만 개체수는 엄청나다.

그래서 유럽은 전통적으로 몇 가지 어종을 대량으로 포획하는 산업형 어업이 발달했다. 물론 증기선과 냉장 기술이 등장한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그 전에 유럽은 이 거친 바다를 헤치고 물고기를 잡으러 갈 방법이 없었다. 중세의 유럽 선박은 노와 돛에 의존하는 목선이었다. 당시 배로는 높은 파도를 견뎌낼 수 없었다.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곳에서는 마을 전체의 어부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북대서양은 어부의 바다가 아니라 죽음의 바다였다.

포르투갈 해변 / 픽사베이
포르투갈 해변 / 픽사베이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바이킹은 대서양을 건너지 않았느냐고. 실제로 그들의 롱십은 9세기부터 대서양을 넘었다. 하지만 그건 전투용이거나 약탈용이었다. 물고기를 싣고 보관할 공간이 필요한 어선과는 전혀 다른 배다. 이런 환경은 유럽의 식문화를 바꿨다. 해산물은 생명을 걸거나 운이 따라야 얻는 자원이었다. 바다는 위험했고 육지는 안전했다. 그래서 유럽인에게 목축업은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북대서양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유럽인들이 생선을 멀리하게 된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북대서양과는 정반대의 바다다. 유럽 남쪽의 바다는 거칠지 않고 따뜻하며 잔잔한 지중해다. 그러나 그 평온한 표면 아래는 생명이 자라기 힘든 환경이 숨어 있다. 지중해는 본질적으로 닫힌 바다다. 대서양과 연결된 입구가 지브롤터 해협 하나뿐이다. 폭이 불과 14km 남짓한 좁은 통로를 통해 바닷물이 드나들기 때문에 해류 순환이 매우 느리다. 물이 섞이지 않으면 산소와 영양분이 바다 전체로 퍼지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지중해 연안에는 큰 강이 거의 없다. 프랑스의 론강, 이탈리아의 포강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하천은 짧고 경사가 급해 바다로 곧장 흘러든다. 육지에서 흘러드는 퇴적물과 영양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영양분이 적으면 플랑크톤이 줄고 플랑크톤이 줄면 작은 물고기와 큰 물고기 모두 감소한다.

기후적 조건도 불리하다. 지중해는 증발이 많고 비가 적어 염도가 높다. 수온이 높으면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가 줄어든다. 그래서 큰 물고기가 살기 어렵다. 멸치, 정어리, 도미, 농어, 오징어 정도뿐이다. 종류도 적고 개체수도 한정적이다. 이런 이유로 지중해는 예쁘지만 먹을 게 없는 바다다. 지중해에서 낚시하는 걸 보기 힘든 이유가 이것이다. 유럽이 생선을 다양하게 먹지 않는 건 입맛의 차이가 아니라 바다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지식 브런치' 유튜브 채널이 9일 게재한 '유럽인은 왜 생선을 즐기지 않을까?'란 제목의 영상.

세 번째 이유는 바다와 육지가 맞닿는 지점에 있다. 유럽의 바다에는 갯벌이 거의 없다. 강이 짧고 해안선은 급사면이다.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넓은 갯벌 대신 절벽과 모래사장이 이어진다. 바다와 육지가 부드럽게 맞닿는 완충 지대가 없는 것이다. 갯벌은 단순한 진흙이 아니다. 강에서 흘러온 흙과 영양분이 쌓이고 밀물과 썰물이 산소를 공급하면서 미생물, 조개, 게, 새우, 작은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시작점이다. 플랑크톤이 자라고 그걸 먹는 작은 생물들이 늘어나면서 먹이 사슬이 촘촘해진다. 갯벌은 바다의 부화장이자 먹이 공장이다.

동아시아의 바다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강이 길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며 대륙붕이 넓다. 한반도의 서해, 중국의 연안, 일본의 내해 같은 지역은 수심이 얕고 강에서 흘러드는 퇴적물과 영양분이 풍부하다. 밀물과 썰물이 하루 두 번씩 드나들며 산소와 영양을 순환시킨다. 수많은 해양 생물이 자라는 천연의 인큐베이터다. 이런 환경이 동아시아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만든 셈이다.

반면 유럽 해안은 사정이 다르다. 파도가 거세고 밀물과 썰물의 변화가 적어 진흙이 쌓이기 어렵다. 퇴적물이 쌓일 틈이 없으니 생태계도 단순해진다. 네덜란드와 독일 사이의 와덴해가 그나마 예외지만 규모가 작고 생산성이 낮다. 그곳은 철새가 머무는 땅일 뿐 인간의 먹을거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갯벌 유무가 해산물의 다양성을 갈랐다.

시선을 바다에서 땅으로 돌려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유럽은 애초에 바다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풍요로웠던 땅이었다. 유럽은 대륙형 문명이다. 사람들이 대부분 내륙에 살았고 바다와 멀리 떨어진 지역이 많았다. 예전에는 물류가 발달하지 않아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신선한 상태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기와 유제품, 곡물이 식사의 중심이 됐다. 지금도 중앙유럽이나 동유럽의 식사에선 육류가 압도적이다.

이탈리아 해변 / 픽사베이
이탈리아 해변 / 픽사베이

사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기에 끌리는 존재다. 고기는 단백질과 지방, 철분, 비타민이 압축된 완전식품이다. 게다가 조리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고 포만감도 크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인류의 조상인 호모에렉투스가 고기를 섭취하면서 뇌가 커졌다는 연구도 있다. 인간이 고기를 좋아해서 진화한 게 아니라 고기를 좋아하도록 진화했기에 생존에 유리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지역에서는 고기가 풍족하지 않았다. 육상동물은 개체수가 적었고 사냥은 위험했다. 그래서 인류는 지역 환경에 맞는 단백질원을 찾았다. 농토가 좁고 목축이 어려운 동아시아에서는 바다가 그 대안이 됐다. 한국, 중국, 일본은 바다가 가까운 해양형 문명이다. 도시들이 해안선을 따라 형성돼 있고 어획물이 빠르게 유통된다. 생선을 날로 먹거나 굽고 조리고 젓갈로 만드는 다양한 해산물 조리법이 그래서 만들어졌다.

반대로 고기가 풍부한 지역에서는 굳이 바다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 유럽의 평야, 북미의 대평원, 남미의 팜파스처럼 목축이 가능한 지역에서는 육류가 훨씬 안정적인 자원이었다. 바다는 계절과 기후에 따라 조업이 불가능할 때가 많았고 잡은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도 어려웠다. 대륙에서의 해산물은 자연히 주변부의 음식이 됐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처럼 고기 생산이 쉬운 나라들은 여전히 해산물을 많이 먹지 않는다. 즉 유럽인이 생선을 덜 먹게 된 건 바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육지에서 얻는 이익이 충분히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생선을 꺼린 데는 비린내 문제도 있다. 유럽의 바다는 차갑고 염도가 높다. 이 환경에서 자라는 물고기들은 살아남기 위해 특별한 화학적 적응을 해왔다. 차가운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들은 세포가 얼지 않도록 보호 물질을 만들어낸다. TMAO(트리메틸아민 N-옥사이드)라는 물질이다. 이 물질이 생선 특유의 비린내를 내는 주범이다. 염도가 높은 바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바닷물이 짜면 물고기는 몸속 수분을 잃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삼투 조절 물질을 만들어야 한다. 역시 TMAO가 그 역할을 한다.

아일랜드 해변 / 픽사베이
아일랜드 해변 / 픽사베이

그래서 염도가 높은 북대서양과 지중해의 생선은 대체로 비린 향이 강하다. 반대로 따뜻한 바다에서 사는 생선은 이런 보호 물질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얼 염려 없고 바닷물도 덜 짜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뜻한 바다에서 잡힌 생선은 냄새가 훨씬 약하다. 우리가 회로 즐기는 광어, 우럭, 도미, 농어 등이 그런 물고기다. 이처럼 유럽의 바다는 생선을 신선하게 먹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잡은 즉시 손질하지 않으면 악취가 진동했다.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유럽의 생선 요리는 대부분 소금과 레몬, 약간의 허브를 곁들인 구이나 훈제다. 맛을 더하기보다는 냄새를 감추는 조리법에 치중하는 것이다.

유럽인이 생선을 즐기지 않게 된 마지막 이유는 종교와 문화의 유산에 있다. 유럽에서 생선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시기는 중세 가톨릭 시대였다. 그러나 그 시작은 미식이 아니라 의무였다. 가톨릭 사회에는 금육일이라는 규정이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을 기리기 위해 매주 금요일에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고기가 피와 육체, 욕망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기 대신 생선으로 단백질을 보충했다. 하지만 생선은 어디까지나 대체식이었을 뿐 즐거운 음식은 아니었다.

이런 인식은 조리 방식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고기 대신 뭘 먹을까가 요리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생선을 어떻게 맛있게 만들지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비린내만 없애면 그만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유럽의 식탁에서 생선은 필요할 때 먹는 음식, 고기는 기쁠 때 먹는 음식이 됐다. 이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나 축일에는 고기 요리가, 사순절 같은 단식 기간이나 금요일엔 생선 요리가 올라온다.

한국 강릉 바다 / 픽사베이
한국 강릉 바다 / 픽사베이

여기에 사회적 요인도 겹쳤다. 고기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사냥이 귀족의 특권이었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행위 자체가 신분을 드러냈다. 반면 신선한 생선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평민은 염장하거나 말린 생선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생선은 가난한 자들이나 먹는 냄새 나는 음식으로 인식이 굳어졌다. 그 문화적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생선을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 배경이 된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유럽의 바다는 차갑고 거칠거나 아름답지만 비어 있다. 갯벌은 생명을 키우지 못했다. 육지는 이미 풍요로워 바다에 의존할 이유도 없었다. 여기에 종교와 신분이 더해지며 생선은 절제와 가난의 상징이 됐다. 그렇게 자연의 조건, 인간의 조건, 문화의 기억이 겹치며 유럽의 식탁은 점점 바다에서 멀어졌다.

반면 아시아의 바다는 얕으며 비옥했다. 강이 흙과 영양분을 실어 나르며 바다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사람들은 그 바다와 함께 살아왔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식탁은 바다의 연장선이 되고 유럽의 식탁은 육지의 연장선이 된 것이다. 이렇게 유럽은 육지의 풍요를 먹었고 아시아는 바다의 풍요를 먹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생선은 메인이라기보단 고기 요리의 곁다리 같은 존재다. 이런 차이들이 오늘날 두 대륙의 식문화, 요리법, 심지어 미각의 세계까지 갈라놓았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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