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계속 먹었다" 암 진단 받고도 의사 말 안 들었던 스티브 잡스
2025-11-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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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보다 앞선 신념의 위험성
‘세상을 바꾼 천재’ 스티브 잡스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현대인의 잘못된 건강 신념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방송된 KBS2 ‘셀럽병사의 비밀’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생로병사를 다뤘다. 그의 사인은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일반적인 췌장암과는 다른 희귀 질환으로, 신경계와 내분비 조직이 뒤엉키며 발생하는 종양이다. 통증이나 혈당 이상으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초기 증상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의사 이낙준은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은 췌장암보다 예후가 좋아 5년 생존율이 96%에 달한다. 그러나 조기 수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잡스는 요로결석 치료 중 우연히 이 종양을 발견했다. 다행히 전이가 없던 초기 단계였지만, 그는 수술을 거부했다. “몸을 인위적으로 건드리는 건 잘못된 일”이라며 채식과 단식으로 병을 이겨내겠다고 고집했다. 이 판단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 ‘자연치유’에 집착한 천재의 선택
잡스는 한 건강 서적의 내용을 깊이 믿었다. 책에는 “모든 병은 점액에서 비롯되며, 육류나 유제품은 점액을 쌓이게 하고 채소와 과일은 이를 배출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그는 육류를 끊고 채소·과일 위주의 식단으로 바꿨으며, 단식과 장세척까지 시도했다.
이낙준은 이에 대해 “단식은 일시적으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근육과 지방이 분해돼 체력이 떨어진다. 암 환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세척 역시 장내 미생물 균형을 무너뜨리고 전해질 불균형을 초래한다. 건강한 사람도 반복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결국 수술했지만 이미 늦었다
스티브 잡스는 진단 9개월 만에 결국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그는 과일 스무디만 마시며 단백질 섭취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낙준은 “과일에는 당분이 많아 췌장의 부담을 키운다. 인슐린 분비 기능이 약한 상태에서 당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오히려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던 2007년, 암은 이미 간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잡스는 세계 최고 의료진을 모아 치료 방법을 직접 선택했지만, 병은 빠르게 진행됐다. 그는 늘 곁에서 아버지를 지켜보던 아들 리드를 위해 “졸업식만은 꼭 보고 싶다”고 말하며 치료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는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 천재의 죽음이 남긴 메시지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맡기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완벽을 추구하고 모든 걸 스스로 통제하던 그의 성격은 결국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했다. 과학보다 신념을 앞세운 선택은, 그 어떤 혁신보다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잡스는 생의 마지막에 최첨단 유전자 서열 분석 검사를 받은 최초의 환자였다. 당시 비용은 1억 원이 넘었지만, 이 기술은 오늘날 14만 원 수준으로 보급됐다. 그의 죽음은 의료 기술 발전의 계기가 되었고, 아들 리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종양학 연구와 암치료 스타트업 투자에 나섰다.
스티브 잡스의 삶은 세상을 바꿨지만, 그의 죽음은 또 다른 교훈을 남겼다. 아무리 천재라도, 질병 앞에서는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