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 사상 부천 트럭 돌진 참사... 페달 블랙박스에 그 장면 딱 찍혔다
2025-11-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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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베테랑 상인이 왜 착각했을까

경기 부천시 제일시장에서 발생한 트럭 돌진 사고의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사실이 차량 내부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을 통해 확인됐다. 20년 넘게 같은 작업을 반복해온 베테랑 상인이 페달을 착각한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경기 부천 오정경찰서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상 혐의를 받는 A(67)씨의 1t 트럭 내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다고 14일 밝혔다. 페달과 브레이크를 비추는 트럭 내 '페달 블랙박스'에는 A씨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밟는 모습이 담겼다. A씨는 사고가 날 경우 원인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페달 블랙박스를 구매해 트럭 안에 설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랙박스에는 영상과 함께 소리도 녹음됐으나 기계음 등으로 인해 A씨의 발언은 들리지 않는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사고 당시 현장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사고 트럭의 브레이크 제동 등이 켜지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급제동 시 도로에 남는 타이어 자국(스키드 마크)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타이어 자국을 일부 확인했으나 선명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이번 사고와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전날 오전 10시 54분께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제일시장에서 1t 트럭으로 돌진 사고를 내 각각 60와 70대인 여성 2명을 숨지게 하고 10∼70대 남녀 19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 트럭은 사고 직전 1~2m 후진했다가 132m를 질주하면서 피해자들과 시장 매대를 잇달아 들이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상자 21명 중 2명이 시장 상인이고 나머지 19명은 이용객이다. 부상자의 연령대는 50~70대에 집중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아내와 함께 20년 넘게 시장 초입에서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면서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고 후진해 인근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A씨는 사고 당일에도 평소처럼 물건을 내리고 후진하던 중 외부 충격을 느껴 잠시 내렸다가 차량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서둘러 다시 탑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재탑승 후 가속 페달을 밟은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시장 상인들은 A씨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밟은 것에 대해 대부분 의아해했다. A씨 가게 맞은편 곡물가게 상인은 "20년 넘게 매일 같은 작업을 하던 A씨가 페달을 착각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옷 가게 주인도 "A씨는 평소 말수도 많이 없고 일만 하는 성실한 분"이라며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안타깝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A씨가 앓고 있는 뇌혈관 질환인 '모야모야병' 등 기저질환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질환은 운전과는 상관이 없고 운전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 아내도 "남편은 대학병원에서 질환을 꾸준히 치료받고 있고 그동안 교통사고를 낸 적 없는 베테랑 운전자"라며 "남편이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고 해도 차량이 굉음을 내며 그렇게 돌진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 부부와 자주 교류하는 막걸리 주점 주인은 "사고 직전 A씨가 꽃게를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힘 좋다고 농담을 건넸다"며 "A씨는 이상한 기색이 없었고 늘 보던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도로교통공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고 트럭 EDR(사고기록장치) 분석 등을 의뢰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EDR 분석 등을 통해 사고와 관련해 제기된 여러 의혹들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내부 지침에 따라 '대형 교통사고'로 분류되는 이번 사고의 수사를 일선 경찰서가 아닌 경기남부청 교통조사계에 맡기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사사례가 없도록 상인회나 지자체와 협의해 관할 지역 전통시장 138곳의 보행자 안전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는 트럭사고로 피해받은 시민을 위해 심리회복지원 활동을 한다고 이날 밝혔다. 적십자 경기지사는 제일시장 상인회 사무실에 심리회복지원 상담소를 설치했다. 재난심리상담활동가, 적십자 봉사원 및 직원 등은 사고 피해자, 목격자, 지역주민, 상인 등을 상대로 심리안정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적십자 경기지사는 사고 이후로 불안·우울 증상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사후 모니터링과 심리회복 지원을 실시할 계획이다.
문수선 적십자 경기지사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장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큰 충격을 받은 상인과 시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서적 지지와 심리안정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