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2 예고편 공개되자 술렁... “그 사람 출연한다는데 실화냐?”

2025-11-2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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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히 이 사람을 평가할 수 있나” 말까지
중식의 기준으로 통하는 '끝판왕'급 출연 예고

후덕죽 / '넷플릭스코리아' 유튜브 채널
후덕죽 / '넷플릭스코리아' 유튜브 채널

넷플릭스가 최근 '흑백요리사2' 티저 예고편을 공개하자 중식계가 술렁이고 있다. 백수저로 후덕죽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후덕죽은 한국 중식업계에서 곧 '기준'이자 '전설', ‘신’, '끝판왕'으로 통한다. 미쉐린 2스타 셰프 이준, 미쉐린 1스타 셰프 손종원, 대한민국 1호 사찰음식 명장 선재스님 등 각 분야 최정상급 셰프가 모인 백수저 라인업에서도 후덕죽의 존재감은 단연 압도적이다.

한국 중식 1세대이자 화교 출신인 후덕죽은 반세기 넘게 한국에서 중식의 품격을 지켜온 인물이다. 현재까지도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중화요리 업계의 최고봉이자 넘버원이다.

이 때문에 일부 시청자가 후덕죽과 같은 거장급 셰프의 요리를 과연 누가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까지 던지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선 "누가 감히 이런 셰프를 평가할 수 있나", "이 정도 레벨의 셰프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멘토로 모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흑백요리사2' 티저 / '넷플릭스코리아' 유튜브 채

일각에서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백수저'로 분류된 정통 셰프들과 '흑수저'로 분류된 재야의 고수들이 경쟁하는 구도에 후덕죽과 같은 대가가 참가할 경우 경쟁의 공정성과 균형에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후덕죽의 참가 자체가 한국 중식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1949년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태어난 후덕죽은 어머니가 소공동 차이나타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6남매 중 넷째였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형과 누나의 도시락을 직접 싸줄 만큼 요리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요리사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것은 1960년대다. 아버지 지인의 권유로 UN센터호텔의 그릴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고, 1972년 소공동 반도호텔의 중식당 '용궁'에 입사했다. 당시 대만에서 셰프를 영입해 쓰촨요리를 선보이던 최고급 중식당이었던 용궁에 들어가기 위해 그는 세 번이나 찾아가 간청했고, 세 번째에야 겨우 허락을 받았다.

후덕죽 / 미쉐린 가이드
후덕죽 / 미쉐린 가이드

입사 초기 석 달간은 무급으로 바닥 청소와 온갖 심부름, 셰프의 옷 빨래까지 도맡아 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도제식 교육이었다. 용궁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요리 기술뿐 아니라 요리사로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후덕죽의 배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5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광동요리를 배웠다. 당시 일본엔 광동요리를 하는 중식당이 많았다. 후덕죽은 누나의 도움으로 일본 중식당에 들어가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한국에서 요리 경력이 있었지만 이를 숨기고 바닥을 쓸고 청소하면서 기술을 하나씩 익혔다.

일본에서 만난 중국 본토 출신 셰프는 후덕죽에게 광동요리의 베이스부터 재료 손질, 재료 선택, 조리법, 노하우까지 가르쳤다. 광동요리는 신선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전국 각지의 식재료를 주로 증기로 쪄서 조리하며, 자연스러운 감칠맛을 중시한다. 후덕죽은 이 과정에서 중국요리는 조미료 맛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한다. 여러 버섯과 멸치, 조갯살 등 건어물을 베이스로 비법을 만들어 화학조미료 없이도 음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3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1977년 서울로 돌아온 그는 당시 오쿠라 호텔과 협업하며 오픈하던 서울 신라호텔에 채용됐다. 일본어와 요리를 배운 덕분이었다.

1977년 11월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에 입사한 후덕죽은 이곳에서 한국 중식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팔선은 한국 중식 4대문파 중 하나로 꼽히는 전통의 중식당이다. 한국 중식 4대문파란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한국의 고급 중화요리를 이끈 4개 전설적 중식당인 ‘아서원’, ‘홍보석’, ‘호화대반점’, 팔선과 이들 중식당 출신 요리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마치 무협지 속 문파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비슷한 무공을 익히듯, 이들 중식당 출신 셰프들도 스승의 요리 철학과 기법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다.

아서원은 1920년대 등장해 가장 유명했으며 북경요리를 추구했다. 당시 요리 주방장만 40명이 넘고 최신식 주방 장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홍보석은 1972년부터 1980년까지 동부이촌동에서 영업하며 사천요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한민국 중식 1세대인 전설적 셰프 왕춘량이 홍보석에 근무하며 제자들을 가르쳤고, 여경래 셰프가 대표적인 홍보석파 출신이다. 호화대반점은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명동 사보이호텔에 있던 중식당으로 소고기탕면과 여러 보양식이 유명했다. 이연복 셰프가 호화대반점 출신이다. 그리고 신라호텔 팔선은 광동식 요리를 추구하며 샥스핀이나 불도장 같은 고급 중식 요리에 특색을 보이는 곳으로, 4대문파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영업 중인 식당이다.

후덕죽은 팔선에 입사한 지 3년 만에 당시 한국 최고의 중식당으로 꼽히던 플라자호텔의 '도원'을 제치고 팔선을 한국 최고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그의 능력을 입증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1987년에는 중국의 최고급 요리 중 하나인 불도장을 국내에 최초로 선보였다. 불도장은 사냥꾼이 사슴 힘줄과 잉어 부레 등을 넣고 끓이는 탕의 냄새가 담장을 넘어 인근에서 수도 중이던 승려의 파계를 불렀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한 요리다. 후덕죽의 불도장은 소도가니, 오골계, 돼지고기, 상어지느러미, 해삼, 전복, 잉어 부레 등 15가지 진귀한 산해진미를 6시간 이상 고아낸 보양식이다. 각종 산해진미를 오랜 시간 끓인 불도장은 조리법 자체는 평범하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호화스럽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국빈 만찬 등 중요한 테이블에 오를 정도로 귀한 요리다.

후덕죽은 팔선에서 근무하면서 300여 종의 요리를 개발했다. 그의 요리는 한국을 방문한 중국 VIP 국빈들에게도 극찬을 받았다. 1994년 한국을 방문한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후덕죽의 요리를 맛본 뒤 "중국 본토보다 맛있는 음식"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중국의 후진타오 전 주석, 주룽지 전 총리 역시 후덕죽의 요리를 극찬했다. 2000년 첫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렸을 때는 '통일불도장'이라는 요리를 개발해 남북한 양측 관계자들로부터 모두 극찬을 받았다.

후덕죽의 요리 철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동원이다.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뜻으로, 평상시 먹는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그는 이 철학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1994년에는 한국 조리사 최초로 대기업, 그것도 삼성그룹 계열사 고위 임원 자리에 올랐다. 신라호텔 조리 총괄 이사였던 그의 명성은 업계에서 하늘을 찔렀다. 2000년에는 '신지식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후덕죽이 이끌었던 팔선은 아시아 베스트5 식당에 선정됐다.

2008년 중앙일보가 한국 중화요리 4대문파를 기사화하면서 화교 요리사이자 대한민국 중화요리 대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후덕죽은 수많은 대가 사이에서 당당히 정중앙에 서 있었다. 이연복, 왕육성, 여경래, 그의 제자 여경옥 등 레전드로 불리는 중식 셰프들조차 그 자리에서 앞에 서 있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그의 위상과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후덕죽은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의 이사인 여경옥 셰프를 제자로 뒀다. 여경래의 동생인 여경옥은 후덕죽 밑에서 요리를 배웠다. 2019년 신라호텔에서 퇴사한 후덕죽은 7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역삼동 르메르디앙 서울호텔에 자신의 이름을 딴 중식당 '허우'를 열었다가, 2022년 1월 장충동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의 중식당 '호빈' 총괄셰프로 영입됐다. 호빈은 '귀한 손님을 모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호빈은 오픈 13개월 만에 미쉐린 1스타를 획득하며 후덕죽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지난해 후덕죽은 미쉐린 가이드가 직접 선정하는 '미쉐린 멘토 셰프 어워드'를 수상했다. 업계에 귀감이 되는 멘토 셰프의 열정과 노력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이 상의 네 번째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훌륭한 요리에 헌신하며 수많은 후배를 양성해온 중화요리의 대가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았다.

후덕죽은 지금도 매일 주방에 출근한다. 출근하면 예약 상황을 체크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오픈 시간 10분 전에는 모든 요리사들과 함께 전체 미팅을 진행하며 전날 방문했던 손님의 피드백이나 당일 방문할 손님의 특이 사항 등을 체크한다. 서비스가 시작되면 손님에게 제공되는 음식 하나하나 맛을 직접 체크한다. 요리를 오래 하다 보니 그를 보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은 편인데, 맛을 체크하는 것은 손님과의 약속과 다를 바 없다고 그는 말한다.

후덕죽은 미쉐린 가이드와의 인터뷰에서 "먹는 사람에게는 그저 먹는 일이지만 위험한 도구, 뜨거운 불을 다루는 요리사로의 삶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면서도 "요리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여전히 요리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셰프는 정년이 없다.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오래 일할 수 있지만, 많은 역량을 갖추고 온전히 주방을 책임져야 하는 어려운 자리"라며 "대단한 일을 해서 대단한 게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지속하며 한자리를 오래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배 요리사들에게는 "일을 배우기에 앞서 인간 됨됨이가 가장 중요하다.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음식을 손님에게 전할 수 없다"고 조언한다.

그는 막내 시절 선배들이 없는 사이에 몰래 탕수육을 만들다가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 요리를 완전히 망친 경험을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장 쫓겨날 뻔했지만 주변에서 겨우 말려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그 일은 평생의 교훈이 됐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고,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배우며 순서를 지켜야 한다. 대충대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현역으로 뛰며 '한국 중식의 최고수'라는 칭호를 이어가고 있는 후덕적이 다음달 16일 공개되는 '흑백요리사2'에서 보여줄 요리와 모습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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