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돔에 우주선이 떴다… 이 갈고 ‘버추얼의 맛’ 제대로 보여준 플레이브
2025-11-23 22:18
add remove print link
21~22일 고척스카이돔서 앙코르 콘서트 ‘DASH: Quantum Leap’ 개최
우주선·눈밭·자동차까지 23곡 내내 즉각적으로 전환되는 연출 돋보여
쉴 틈 없이 몰아친 라이브 무대… 안정적인 실력까지 확인돼

아무도 없는 우주 속에 거대한 우주선이 떠 있고, 그 안에서 진공 상태로 부유하는 다섯 남자의 모습이 차례로 나타났다. 이어 선글라스를 끼고 지구를 향해 뛰어들자 함성은 더 커졌다. 역대급 연출로 매 순간 놀라게 하는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콘서트 현장이다.

플레이브는 지난 21일과 22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DASH: Quantum Leap' 앙코르 공연을 개최했다. 소속사 추산 양일 관객은 약 3만7000여 명이다. 21일 공연장 일대는 시작 전부터 팬들로 북적였다. 드레스코드인 ‘연분홍’에 맞춰 꾸민 팬들은 아령 모양 응원봉과 산리오 인형을 들고 사진을 연달아 찍으며 설렘을 드러냈다.
부산에서 왔다는 김정원(29) 씨는 “고척돔이라는 의미 있는 공연장에서 플레이브가 설 수 있어서 너무 설레고 행복하다”며 “항상 기대 이상의 무대를 보여줘서 너무 기대된다”고 말했다. 특별히 기대하고 있는 무대가 있냐고 묻자 “신곡 ‘뿌우!(BBUU!)’에서 밤비의 귀여운 애교를 보고 싶다”고 답했다.

공연은 우주를 가로지르는 VCR로 시작됐다. 360도에 가깝게 펼쳐진 와이드 스크린에 거대한 우주선이 나타나자, 관객석은 압도당한 듯 조용해졌다. 곧 멤버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지구를 향해 뛰어내리며 음향이 커지자, 공연장 전체가 단숨에 압도됐다. 오프닝곡 ‘Watch Me Woo!'에서 멤버들이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 연출로 시작됐다. 멤버들은 연신 “소리질러!”를 외치며 호응을 이끌었고, 본 무대에서는 댄서들이 등장해 화려한 구성을 보여줬다. 특히 밤비와 노아가 뽀뽀하는 듯한 안무를 보이자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오프닝 인사로 예준은 엉덩이를 흔들며 “오늘 다 쏟아붓겠다”고 했고, 하민은 배우고 있는 발레 동작을 직접 보여주며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노아는 “고척돔 입성이 소원이었다”며 감격스러움을 전했고, 밤비는 긴장한 듯 더듬거리면서도 “눈 많이 마주칠 거니까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해 곳곳에서 귀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통통 튀는 '버추얼 아이돌'에 이어 ‘RIZZ’에서는 멤버별로 문신이 새겨진 모습이 보였고, 노아와 하민이 밀착하는 페어 안무가 펼쳐지자, 폭발적인 함성이 이어졌다. ‘Island’에서는 하민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해 분위기를 전환했다. ‘12시 32분’에서는 깊은 밤을 닮은 조명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카메라 시점이 더해져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마지막 엔딩에서는 멤버들이 시계추가 되어 '12시 32분'을 표현해 시각적 재미를 극대화했다.
서정적인 편곡이 더해진 ‘여섯 번째 여름’이 시작되자, 무대 중앙에 흰 천이 다섯 줄 내려왔다. 뒤에서 강한 조명이 비추자, 멤버들의 실루엣이 떠오르며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감을 한층 더 좁혔다. ‘From’에서는 별빛이 쏟아지는 배경이 이어져 우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왔다.

연출은 이후 더욱 다채로워졌다 ‘Dear. PLLI’에서는 실제 눈밭처럼 표현된 스크린 위에 멤버들이 누워 움직일 때마다 눈이 밀리며 자연스러운 디테일이 엿보였고 ‘WAY 4 LUV’는 유럽 오페라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무대와 멤버별로 다른 가면 연출로 색다른 재미를 줬다. ‘Chroma Drift’는 자동차가 떠다니는 몽환적인 비주얼로 공연장의 공기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바꿨다. 또 라이브 밴드를 활용한 'Dash'에서는 파워풀한 연주가 더해져 공연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깜짝 커버 무대도 이어졌다. 동방신기(TVXQ!)의 ‘주문(MIROTIC)’을 검정 슈트와 레이스 안대를 끼고 등장하자 고척돔 뚜껑이 열릴 듯 비명이 쏟아졌다. 이후 하이라이트에서 밤비가 고음을 힘껏 지르자, 환호성과 함께 응원법이 이어졌다. 무대가 끝난 뒤 하민은 “수상할 정도로 응원법을 잘 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솔로 무대에서는 버스킹 콘셉트가 더해졌다. 화면 속 배경이 고척돔 외부로 전환되며 실제 야외 버스킹을 보는 듯한 연출이 이어졌다. 이들은 이번 고척돔 공연을 또 다른 시작으로 삼겠다며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예준과 노아는 2022년 10월 홍대에서 실제로 버스킹을 진행한 적이 있다. 밤비는 정키의 ‘잊혀지다’, 하민은 허각의 ‘Hello’, 노아는 유우리 ‘베텔기우스’, 예준은 자작곡 ‘좋아한다는 그 한마디’, 은호는 자작곡 ‘But Your Idol’을 각각 선보였다.
다만 기술적 한계로 인한 아쉬움도 있었다. 손이 심하게 떨리거나 무대 도중 표정이 멈춘 채 입이 움직이지 않는 오류가 발생해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후 ‘Pump Up The Volume’과 ‘숨바꼭질’로 밝은 에너지가 돋보이는 무대가 이어졌다.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한 다섯 멤버의 군무는 청춘 영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특히 밤비의 가볍고 섬세한 춤선이 돋보였다. 이어서 데뷔곡 ‘기다릴게’와 ‘Pixel World’가 숨 가쁘게 이어졌고, 팬들은 “잠깐 기다리면 돌아오겠지”를 외치며 앙코르를 요청했다.
팬들의 요청에 화답하듯 지난 10일 발매된 신곡 ‘뿌우(BBUU!)’에서는 멤버들이 힐리스(바퀴 달린 신발)를 신고 무대를 쉼 없이 오갔고, 입술을 내미는 ‘뽀뽀’ 안무가 나올 때마다 탄성이 터졌다. 따뜻한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인 ‘봉숭아’에서는 시골집 배경에 노을이 번지며 잔잔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Merry PLLIstmas’에서는 병정 옷을 갖춰 입고 등장해 공연장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마지막 소감으로 예준은 “늘 그래왔듯이 플리(팬덤명) 하나만 보고 달려가겠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고, 노아는 “고척돔 무대가 믿기지 않는다”며 “감히 영원을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밤비 역시 “마음 깊이 감사하고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고 전했다. 은호는 "오늘도 예쁜 목소리로 힘차게 응원해줘서 행복했다"고 말했고 하민은 "고척돔은 꿈도 꾼 적 없었는데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꿈이 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엔딩곡 ‘우리영화’가 끝난 후 멤버들은 우주선에 탑승하며 떠나는 연출과 함께 낮은 화질과 거친 음향으로 멤버별 영상 메시지가 이어졌다. 우주선 안에서 직접 영상을 보내는 듯한 분위기로 끝까지 몰입감을 이어갔다.

흔히 헤메코(헤어·메이크업·코디)를 바꾸기 위해 VCR이나 댄서 무대를 넣어 숨을 고르지만, 플레이브 공연에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무대마다 분위기에 맞춘 의상과 배경이 순식간에 바뀌는 탓에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공연이었다. 플레이브는 데뷔 이후 끊임없는 'AI(인공지능)' 논란이 따라붙었다. 팬들이 "AI 아니고 뒤에 사람이 있다"고 설명해야 할 만큼 계속됐지만, 3시간 동안 휘몰아치는 무대에 오히려 진짜 AI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을 자랑했다.
은호의 자작곡 'But Your Idol'의 '개꿀 빤단 댓글 창 수많은 바이럴 마케팅' 가사처럼 버추얼 아이돌은 소위 '개꿀'이라는 인식이 따라붙곤 한다. 얼굴을 가린 채 활동하니 보통 아이돌들이 겪는 사생활 침해나 체형 관리 부담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무대를 보여주는 이들을 본다면 그 인식이 얼마나 단편적인 시선인지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된다. 매 순간 끊임없이 증명해 내는 플레이브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