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울렸다…이순재 별세로 재조명 중인 백상 시상식 ‘전설의 특별무대’

2025-11-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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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 이순재, 향년 91세 나이로 별세
1년 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선보인 특별무대 재조명

국민배우 이순재가 25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국내 문화·예술·정치 등 각계에서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故) 이순재가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선보인 특별무대가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90세의 나이로 무대에 올라 연기 인생 69년의 철학을 쏟아낸 그의 모습에 후배 배우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눈물을 흘렸다.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이순재 특별무대에 눈시울을 붉힌 배우들 / JTBC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이순재 특별무대에 눈시울을 붉힌 배우들 / JTBC

이순재는 지난해 5월 7일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연극 형식의 특별무대를 펼쳤다.

무대는 연극 오디션장을 배경으로 시작됐다. "늙은 배우가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온 접수번호 1번"이라며 등장한 이순재는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연기 철학을 풀어냈다.

"올해로 90세가 된 이순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1956년도 연극 '지평선 너머'로 시작했고, 올해로 69년 차다. (출연한) 드라마는 175편 정도, 영화 150편 정도, 연극 100편 미만"이라고 자신의 이력을 밝혔다.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를 묻는 질문에 이순재는 객석의 최민식을 언급했다. "영화 '파묘' 잘 봤다"며 "언제 그런 작품을 같이 해봅시다. 내가 산신령을 하든 귀신 역을 하든 같이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최민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존경의 뜻을 전했다.

이순재의 호명에 허리 숙여 인사한 최민식 / JTBC
이순재의 호명에 허리 숙여 인사한 최민식 / JTBC

이병헌에게는 "우린 액션을 해야 하는데 이 나이에 치고 받을 순 없고, 한국판 '대부'를 하자"며 "내가 말론 브랜도 역할을 하고, 우리 이병헌 배우가 알 파치노 역할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언제 한 번 그런 걸 기획해보자"고 제안해 웃음을 자아냈다. 눈시울을 붉힌 이병헌은 미소를 띤 채 박수를 보냈다.

본격적인 연기론이 시작되자 이순재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대본 암기에 대해서는 "대본 외우는 건 배우로서 기본"이라며 "배우의 생명은 암기력이 따라가느냐부터 경계선이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미안합니다. 다시 합시다'를 100번 하면 그만둬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본을 완벽하게 외워야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다. 대사에 혼을 담아야 하는데 못 외우면 혼이 담기겠냐"며 "대사 못 외울 자신 없으면 배우 관둬야 한다. 그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오랜 연기 경력에도 여전히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라고 답했다. "몸살을 앓다가도 '레디' 하면 벌떡 일어나게 되어 있다"며 "그런데 이 연기가 쉽진 않다. 평생을 했는데도 아직도 안 되고 모자란 데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배역 나올 때마다 참고하고 그런다"며 "배우라는 역할은 항상 새로운 작품, 역할에 대해 도전"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제60회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특별무대를 꾸민 이순재 / JTBC
지난해 '제60회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특별무대를 꾸민 이순재 / JTBC

그는 "그동안 연기를 아주 쉽게 생각했던 배우, 이만하면 됐다 하는 배우 수백 명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게 이거다. 완성을 향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객석은 숙연해졌다.

마지막 질문인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에 이순재는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답한 뒤 즉석에서 연극 '리어왕'의 한 장면을 연기했다. 짧은 연기를 마친 그는 "꼭 나 시켜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무대를 떠났다.

이순재가 퇴장할 때까지 시상식에 참석한 모든 배우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유연석, 엄정화 등 후배 배우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유튜브, JTBC Voyage

이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이순재는 "후배들이 다 일어나서 기립박수 치고 눈물을 흘리고 했다. 그때 어떤 기분이셨나"라는 질문에 "백내장 수술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시력이 좀 떨어져서 그때는 정확하게 보지를 못했다. 늙은 배우가 무대에 올라갔으니까 일종의 동정심도 들고 하지 않았겠나"라며 겸손하게 답했다.

유연석에 대해서는 "특히 우리 유연석 군하고 저하고는 사제지간"이라며 "세종대학교에서 내가 교수로 있을 때 같이 작품도 했고 그런 인연 때문에 옛날 생각이 나서 운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연석 역시 한 방송에서 "제 대학교 은사님"이라며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리어왕 공연을 했을 때 (이순재) 선생님이 제 지도 교수로 계셨다. 그 대사를 아흔이라는 나이에 무대에서 하시고, 제가 그걸 객석에서 보니까 정말 감동적이었다. 당시 많은 것들이 스치면서 많이 울었다"고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이순재 특별무대에 눈물을 흘린 유연석 / JTBC
이순재 특별무대에 눈물을 흘린 유연석 / JTBC

이순재는 지난해 10월 건강 악화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마지막 공식 석상은 올해 1월 11일 방송된 '2024 KBS 연기대상'이었다. 이날 KBS 드라마 '개소리'로 대상을 받은 그는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이 상은 나 개인의 상이 아니다"라며 "시청자 여러분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그의 모습이 마지막 방송 출연이 됐다.

대한민국 최고령 국민배우로 활약한 고(故) 이순재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상주로는 아내 최희정 씨와 두 자녀가 이름을 올렸다.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으로 예정됐으며, 장지는 경기도 이천시 에덴낙원이다.
국민배우 이순재 / 뉴스1
국민배우 이순재 / 뉴스1
home 윤희정 기자 hjyun@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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