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심장이 멈춘 순간, 낭만이 젖어들다
2025-11-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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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심장이 멈춘 순간, 낭만이 젖어들다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25일, 광주시 북구 전남대학교 교정의 한 버스정류장. 계절은, 잠시 이곳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새빨갛게 타오르는 메타세쿼이아의 열정 위로, 차가운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채화 한 폭을 그려내고 있었다.
◆적색 경보, 가을의 마지막 절정
누가 가을을 스산하다 했던가. 이날 캠퍼스의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하늘을 향해 뻗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붉은빛을 남김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캔버스 위 유화처럼 짙게 깔린 붉은색의 향연은, 지나는 이의 발걸음마저 무겁게 붙잡을 만큼 강렬했다.
◆우산 아래, 잠시 멈춰 선 청춘
그 붉은빛의 터널 아래, 색색의 우산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다음 강의실로, 혹은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잠시 멈춘 학생들. 누군가는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또 다른 누군가는 텅 빈 허공에 시선을 던진 채,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쏟아지는 가을비와 타오르는 단풍이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이들의 기다림은 지루함이 아닌 짧은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기다림은 어떤 색일까
투명한 빗방울과 뜨거운 단풍잎이 교차하는 이 공간에서, ‘기다림’은 어떤 색이었을까. 아마도 다음 목적지로 데려다줄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청춘의 뜨거운 열정이 함께 젖어들고 있었을 것이다. 버스정류장은, 잠시 ‘생각의 정류장’이 되었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버스가 온다
이윽고 저만치서 다가오는 셔틀버스의 불빛. 낭만적인 정적을 깨고, 멈춰 있던 ‘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저마다의 우산을 접고, 다시 ‘일상’이라는 이름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붉은 단풍과 가을비가 선물한 그날의 풍경은, 팍팍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한 편의 시(詩)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