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 뚫더니…22년 만에 일본 흥행 1위 갈아치운 '한국 감독 영화'
2025-11-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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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에 역대 실사영화 흥행 1위 등극
일본 영화계에 22년 만에 새로운 흥행 기록이 탄생했다. 재일교포 3세 이상일 감독의 신작이 일본 실사 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하며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서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배급사 미디어캐슬은 26일 영화 '국보'가 지난 24일 기준 흥행 수익 173억 7739만엔(약 1632억원)을 기록하며 관객 1231만 명을 동원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2003년 개봉한 '춤추는 대수사선 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 이후 22년간 깨지지 않던 일본 실사 영화 흥행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 성과는 애니메이션이 절대 강세인 일본 영화 시장 특성상 더욱 주목할 만하다. 일본 역대 박스오피스 상위권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시장에서 17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실사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어서며 팬데믹 이후 실사 영화 최고 흥행 기록까지 세운 것이다.

'국보'를 만든 이상일 감독은 재일교포 3세 출신으로 일본 영화계에서 이미 입지를 굳힌 인물이다. 첫 작품 '푸를 청'으로 피아필름페스티벌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하며 감독 데뷔를 알렸고, '훌라 걸스'로는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모두 수상했다. 이후 '악인', '분노', '유랑의 달'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과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시즌2 연출에도 참여했다.
영화는 일본 현대문학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본 전통 연극인 가부키를 배경으로 예술의 본질과 인간의 욕망, 무대 안팎에서 벌어지는 집념의 충돌을 그렸다. 국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평생을 경쟁한 두 남자 키쿠오(요시자와 료)와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의 삶을 통해 예술이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초월하게 만드는지를 다룬다.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 키쿠오는 멸문당한 가족을 뒤로하고 가부키 명문가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의 눈에 띄어 가부키의 길로 들어선다. 명문가의 아들인 슌스케와 경쟁하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지만, 세습 제도가 강한 가부키 세계에서 출신의 한계에 부딪친다. 천재의 재능과 적자의 혈통이 충돌하며 질투와 배신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서로를 성장시키는 고통스러운 여정으로 그려진다.
일본 관객들은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라며 호평했고, 이런 반응은 재관람 열풍으로 번지며 장기 흥행의 동력이 됐다. 특히 가부키의 무대미술과 의상, 분장, 배우의 몸짓이 영화적 카메라워크와 결합해 만든 독특한 시각적 경험이 극장을 찾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상일 감독은 세계적인 촬영감독 소피안 엘 파니를 기용해 제3자의 시선으로 가부키의 세계를 담아냈다. 주연 배우 요시자와 료는 1년 반 동안 가부키 연습에 몰두하며 인물의 감정에 따른 춤을 익히는 등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이상일 감독은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의 뿌리는 한국"이라며 "한국인이라는 점이 영화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혈통이나 외부에서 온 인간이라는 점 같은 영화적 구조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요소와 겹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관객들이 그런 점에 대해 밀접하게 느껴주시면 기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보'는 올해 제98회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일본 대표작으로 선정됐다. 칸, 상하이, 토론토, 부산 등 세계 주요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지난 10월 방콕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본격적인 아카데미 레이스에 돌입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19일 개봉해 첫 주 누적 5만 8328명을 동원하며 예술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26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 7049명을 동원해 독립 예술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했으며, 전체 박스오피스에서는 4위를 기록 중이다. 누적 관객 수는 약 7만 2020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