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장남 잃은 부모 “둘째, 셋째 아들까지 군대 가라는 건 가혹해”
2025-11-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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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명만 보충역으로 전환 가능한 병역 규정에 문제 제기
고 김도현 상병의 유가족이 '병역 감면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 상병의 1주기를 하루 앞뒀던 지난 24일 강원도 홍천군 소재 육군3군단 제20여기갑여단에서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고인은 지난해 11월 25일 아미산에서 훈련 중 순직했고, 이후 상병으로 1계급 추서됐다.
고인의 부모에겐 첫째 아들이었던 김 상병 외 둘째(20세), 셋째(16세) 아들이 있다. 유족은 ‘형제 1명만 보충역으로 전환 가능’한 병역 감면 규정이 가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병역법은 전사자·순직자 또는 전상·공상 장애인이 있을 때 형제자매 중 1명만 병역을 감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김 상병의 둘째·셋째 아들 중 1명만 감면 대상이 되지만,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 입장에서는 둘 중 누구도 군에 보내고 싶지 않은 심정이 들 수도 있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한 동생들 역시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어 규정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사망 원인 규명 지연이 남기는 상처
유족은 김 상병의 사망 경위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다면 고통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단지 병역 감면의 문제를 넘어, 의문사에 대한 조사와 진상 규명이 늦어질수록 가족이 겪는 상실감과 분노는 누적된다. 사고 이후 다른 자녀에게 다시 군 복무 의무를 지우는 것은 가족의 정신적 외상까지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제도 논쟁과 별개로 군의 조사 방식과 대응 절차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는 상황 역시 문제로 꼽힌다.

◆ 국회에서도 “법 개정 필요”… 다자녀·저출산 상황도 고려
국회 국방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은 유족에 대한 책임과 위로를 국가가 충분히 다하기 위해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 가구가 겪는 위험 부담을 생각하면 병역 감면 제도 역시 시대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 감면 대상자 수를 늘리자는 공식 논의는 거의 없었지만, 의무복무 중 사고를 당한 군인의 형제에게 병역 감면을 확대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특히 현행 법이 순직·공상 범위에만 제한되어 있어 군 복무 중 사망했더라도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 인권위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은 원칙적으로 모두 감면 대상 포함해야”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병역 감면 범위를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 전체’로 넓혀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직무와 무관함이 명백히 입증된 사례가 아닌 한 사망 군인을 모두 순직자로 인정하는 방향이 형평성에 맞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권위는 유족이 충분히 애도하기도 전에 또 다른 자녀에게 동일한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매년 자살이나 사고 등으로 사망하는 장병이 일정 규모 존재하는 점을 고려하면 범위 확대가 병역 자원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 법안 폐기 이후 멈춘 논의… 남은 것은 ‘군에 대한 불신’
그러나 관련 법 개정은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되며 논의가 중단됐다. 제도 개선이 고도의 정책 판단을 요한다는 이유로 시간이 흐르면서 추진력이 떨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족이 병역 감면 확대를 요구하는 근본 배경에는 ‘군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고 이후의 조사 과정, 책임 소재 규명, 유가족에 대한 대응이 미흡하면 제도 문제가 아닌 신뢰의 문제가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다.

◆ “군이 시민과 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악순환 끊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현재 논란의 핵심은 군의 안전성과 신뢰라고 진단했다. 부모들이 자녀를 군에 보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병역 감면 논의만으로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장병들이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있는 진상 규명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