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보다 살짝 매워요” 사라질까…매운맛 정량화 기술 세계 첫 개발

2025-11-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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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차 없는 매운맛 측정, 센서로 구현

매운맛을 감이 아니라 숫자로 재는 시대가 열릴지 관심이 쏠린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키면 “매운맛 몇 단계로 드릴까요”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받는다. 그런데 그 단계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면 의외로 애매하다. 누군가에게 2단계는 딱 기분 좋은 매운맛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땀이 줄줄 나는 고통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국 익숙한 기준을 끌어온다. “이거 신라면보다 맵나요” “불닭 정도예요” 같은 식으로 대중적인 라면을 매운맛 자처럼 쓰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비교가 편하긴 해도 철저히 감각에 기대는 주관적 척도라는 점이다. 같은 신라면도 컨디션이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 같은 메뉴도 사람마다 “맵다”의 의미가 달라진다. 매운맛이 늘 이렇게 감과 비유로만 오갔다면 이제는 그 감각을 숫자로 바꿔보려는 시도가 나왔다는 소식이 눈에 띈다.

◈ 매운맛에도 ‘기준’이 필요했던 이유

한양대 의과대학 정승준 장용우 교수 연구팀은 28일 매운맛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생리반응 기반 매운맛 정량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최근 불닭볶음면 같은 K 매운 음식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매운맛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졌다. 매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매운맛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와 “오히려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동시에 접해 왔다.

실제로 매운맛이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가 있는가 하면 위암 담낭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도 있어 논쟁이 이어졌다. 연구팀은 이런 혼란의 배경에 매운맛을 정확히 재는 표준 도구가 없었다는 점이 깔려 있다고 봤다.

◈ 스코빌 척도만으로 부족했던 이유

지금까지 널리 쓰인 스코빌 척도는 사람이 직접 맛보고 체감 강도를 바탕으로 수치를 매기기 때문에 개인차와 컨디션에 따라 결과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험실에서 캡사이신 농도를 분석하는 HPLC 방식도 존재하지만 이 역시 “성분 농도”를 보여줄 뿐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매운 체감과는 어긋날 수 있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즉 기존 방식으로는 “진짜 매운맛이 어느 정도인지”를 의료 연구나 식품 개발 현장에서 일관되게 비교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매운맛 수용체로 알려진 TRPV1이다. TRPV1은 캡사이신 같은 매운 성분이 닿을 때 활성화되며 통증이나 열감 같은 생리 반응을 일으키는 수용체다. 연구팀은 TRPV1이 실제로 반응하는 강도와 패턴을 측정하면 사람의 주관을 거치지 않고도 매운맛을 과학적으로 정량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험 과정에서 연구팀은 캡사이신 농도를 달리했을 때 나타나는 쥐의 행동 변화와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칼슘 신호를 함께 계측했다. 그 결과 매운맛 강도는 농도에 비례해 단순히 직선처럼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 구간에서 급격히 체감이 뛰는 비선형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리 반응에 맞춘 매운맛 5단계 등급 체계를 제안했다. 사람마다 “같은 라면도 다르게 맵다”고 느끼는 이유를 생리적 반응 곡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TRPV1 기반 매운맛 정량화 모식도 / 한양대학교 제공
TRPV1 기반 매운맛 정량화 모식도 / 한양대학교 제공

◈ 매운맛을 ‘기계로’ 재는 단계까지 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팀은 TRPV1 반응을 분자 수준에서 전기 신호로 읽어내는 나노바이오센서도 개발했다. 매운맛을 느끼는 수용체가 활성화될 때 생기는 변화를 센서가 전기적 신호로 잡아내는 방식이라 개인차 없이 일관된 매운맛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공동 제1저자인 유승원 김민우 학생은 이번 연구가 매운맛을 생리학적 반응이라는 과학 언어로 처음 해석한 시도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식품 산업에서 제품의 매운맛을 표준화하거나 소비자용 매운맛 측정 기기를 만드는 일에도 활용할 수 있다. 개인별 체감 강도를 고려한 맞춤형 매운 음식 개발이나 건강 연구에서 매운맛을 정확히 분류하는 기준으로 쓰일 가능성도 크다. 연구팀은 TRPV1 기반 접근이 매운맛뿐 아니라 통증 체온 조절 같은 다른 감각 연구로도 확장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연구는 한양대 융합의과학자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국제 학술지 ‘Biosensors and Bioelectronics’에 2026년 2월 게재될 예정이다. 매운맛을 둘러싼 논쟁의 출발점이었던 “측정의 부재”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후속 연구와 산업 적용 속도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home 정혁진 기자 hyjin27@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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