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싱숍과 산부인과 분만실의 여성까지 찍혔다

2025-11-30 09:42

add remove print link

IP 카메라 보안 불감증이 빚은 최악의 디지털 성범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가장 은밀해야 할 가정집 침실부터 사생활 보호가 최우선인 산부인과 분만실, 여성 전용 시설인 필라테스 스튜디오와 왁싱숍까지 무려 12만 대에 달하는 IP 카메라가 해킹당하며 한국 여성들의 사생활이 통째로 털리는 일이 발생했다. 해킹으로 탈취한 영상은 성적 목적으로 편집돼 해외 불법 음란물 사이트에 팔려나갔으며, 피해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디지털 성범죄의 희생양이 됐다. 이번 사건은 홈캠, 보안용 등으로 널리 사용되는 IP 카메라의 보안 불감증이 빚어낸 최악의 디지털 성범죄로 기록될 전망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가정집과 사업장에 설치된 IP 카메라 약 12만여 대를 해킹해 탈취한 영상을 불법 사이트에 판매한 피의자 4명을 검거하고 이 중 3명을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IP 카메라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단순 반복이나 순차적인 숫자 조합 등 취약한 보안 상태인 점을 노려 조직적으로 침입했다. 확보한 영상은 성적으로 편집돼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사이트 'A'에 판매됐으며, 경찰은 A 불법 사이트 운영자와 불법 촬영물 구매·시청자에 대한 수사, 그리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피해 규모와 범행 수법의 대담함은 과거의 유사 범죄를 능가한다. 구속된 피의자 B(무직)씨와 C(회사원)씨는 각각 약 6만 4000대와 7만 대의 IP 카메라를 해킹했다. 중복 해킹 건수를 제외해도 총 12만 대에 달하는 카메라가 이들에게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피의자들이 해킹에 성공해 영상을 탈취한 전체 IP 카메라 대수다. 이처럼 대규모로 사생활 영상이 유출된 사례는 이례적이다.

주범 격인 B씨는 해킹으로 확보한 영상 중 성적인 내용이 포함된 545개의 촬영물을 편집해 A사이트에 3500만 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받고 팔아넘겼으며, 회사원인 C씨 역시 648개의 편집 파일을 판매해 1800만 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취득했다. A사이트의 경우 지난 1년간 게시된 전체 영상의 62%가 B씨와 C씨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당이 불법으로 챙긴 범죄 수익은 총 5300만 원에 이른다. 경찰은 이들이 수익을 모두 소진했기에 과세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국세청에 관련 내용을 통보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더욱 심각한 것은 피해자들이 입은 막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다. 해킹당한 카메라는 가정집 침실과 거실 내부를 촬영하는 홈캠부터 보안용 카메라, 그리고 특정 시설에 설치된 카메라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경찰 수사 결과, 중국어로 운영돼는 A사이트에는 '한국' 카테고리가 따로 만들어져 한국 여성들을 노린 범죄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구체적인 피해 장소로는 여성들이 이용하는 필라테스 스튜디오, 왁싱숍 등 사생활 보호가 필수적인 곳이 포함됐다. 특히 산부인과 분만실까지 영상이 유출돼 충격을 안기고 있다. 의류 매장, 코인노래방 등 공공성이 높은 장소도 포함돼 유출 영상의 종류가 매우 광범위했다. 이들 장소는 여성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운동 중이거나, 가장 취약하고 민감한 상태에서 의료 행위를 받는 등 사생활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간이다. 영상은 해외 불법 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에 유포돼 피해자들의 일상이 영구적으로 훼손됐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가장 은밀한 모습이 전 세계에 퍼지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극심한 불안과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검거된 이들 중 피의자 D(자영업)씨는 1만 5000대의 IP 카메라를 해킹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포 및 판매는 하지 않았으나 아동·청소년이 노출된 영상을 별도로 편집하고 소장한 사실이 확인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혐의가 추가돼 구속됐다.

이처럼 다수의 피의자들이 연이어 해킹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IP 카메라 보안의 취약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준다. IP 카메라 중에는 피의자들에 의해 연이어 해킹당한 것들도 있었는데, 이는 보안 취약점이 개선되지 않아 재차 범죄의 표적이 됐음을 의미한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인 불법 사이트 A의 운영자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다른 국가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고, 외국 수사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추적을 진행 중이다.

A사이트는 지속적으로 주소를 바꿔가며 접속 차단을 피하고 있어 경찰은 외국 법집행기관과 협력해 사이트 폐쇄를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이 사이트를 통해 불법 촬영물 등을 구매하거나 시청한 혐의로 3명을 검거하는 등 관련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피해 장소 58개소에 수사관이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 우편을 해 피해 사실을 통지하고 IP 카메라 비밀번호 변경 방법을 안내했다. 이 58개소는 피해가 명확히 확인된 곳을 우선으로 했으며, 나머지 피해자에 대한 통지 및 보호 조치도 순차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더불어 경찰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와 통신사들이 함께 보안이 취약한 IP 카메라 이용자를 대상으로 확인 절차를 거치고 있으며, 해당 이용자들에게 피해 가능성과 계정·비밀번호 변경 등 조치 방안을 안내할 예정이다.

또한 경찰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과 협력해 고위험·대규모 영상 유출 사업자부터 우선 조사해 추가 피해 예방 조치를 신속히 추진할 예정이다.

경찰은 무엇보다 IP 카메라를 설치한 개별 사용자들 스스로가 경각심을 갖고 접속 비밀번호를 즉시, 또 정기적으로 변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사건의 피해 카메라는 비밀번호가 아이디와 동일 글자의 단순 반복이거나 순차적인 숫자나 문자의 조합 등 매우 단순했던 것으로 확인돼 초기 보안 설정의 중요성을 방증했다.

한편 경찰은 불법 촬영 피해자들을 최대한 식별해 확인된 피해자들에게는 삭제·차단 처리 절차를 안내하는 등 다양한 보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전담경찰관 지정을 비롯해 피해상담, 불법 촬영물 등 성착취물 삭제·차단지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연계 등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은 향후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 행위에 대해서도 상시 점검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