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30분 거리를 10분으로 단축… 이건 말 그대로 '혁명'이다
2025-12-0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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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관광지도 재편할 해저터널

지금까지 경남 남해군에서 전남 여수시까지 가려면 69㎞의 우회로를 1시간 30분 동안 달려야 했다. 하지만 2031년, 이 시간이 10분으로 줄어든다. 남해군과 전남 여수시를 바다 밑으로 직선 연결하는 해저터널이 지금 이 순간에도 땅을 파고 바다를 뚫으며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8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한 남해~여수 해저터널 건설사업은 지난달 기준 전체 공정률 5%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남해지역에서는 지난 3월 본선 터널 가도·갱구부 조성을 시작해 9월에 터널 시점 굴착에 착수했으며, 현재 연결로 터널 굴착이 진행 중이다. 여수쪽에서는 갱구부 진입도로와 소하천 정비 등이 한창 이뤄지고 있다. 
총사업비 8067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총길이 8.08㎞ 구간 중 5.76㎞가 해저터널이며 연결로가 2.71㎞다. 진출입로 2곳, 교차로 3곳, 교량 4곳이 건설되며 설계속도는 본선 시간당 60㎞, 연결로 40㎞다.
가장 주목할 점은 역시 이동시간의 극적인 단축이다. 2031년 도로가 완성될 경우 69㎞를 이동해야 할 구간이 8㎞로 줄어들고, 통행시간은 현재 90분에서 10분으로 단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순한 교통 편의 향상을 넘어 두 지역의 생활권을 완전히 재편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 해저터널은 25년을 기다린 숙원사업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한려대교' 건설 계획으로 처음 제안됐지만,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2002년, 2005년, 2011년, 2015년 네 차례에 걸쳐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했다. '4전5기 사업'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2021년 예타 조사 기준이 일부 개정돼 '지역균형발전' 항목의 가중치를 얻으면서 극적으로 통과됐고, 국토교통부 건설 계획에 최종 반영됐다. 박근혜 정부 때 교량에서 해저터널 방식으로 전환한 이 사업은 2024년 착공을 시작으로 2031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저터널 사업은 2021년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후 국토부의 제5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반영됐다. 기재부와 총사업비 협의를 완료한 뒤 실시설계 등을 거쳐 여수와 남해에 현장사무소 설치를 완료했다.
이 사업의 의미는 단순히 시간 단축에 그치지 않는다. 국도 77호선의 마지막 미개통 구간을 연결함으로써 인천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U자형 국도의 대동맥을 완성하게 된다. 영호남을 잇는 동서 화합의 상징이자, 남해안 관광벨트를 하나로 묶는 핵심 인프라가 될 전망이다.
영호남 지역균형개발과 관광사업 활성화, 영호남 화합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터널이 완공되면 연간 방문객 7000만 명이 여수·순천권과 남해·하동·사천권을 넘나들 수 있게 되며, 고성·통영·거제권까지 그 영향권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남해군에게 이 터널은 특히 큰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거리가 먼 진주시에 의존하던 정주여건이 개선된다. 응급환자가 진주 병원으로 가려면 1시간 30분이 걸리지만 터널 개통 후에는 여수 병원에 30분대로 도착할 수 있다. 또한 여수시가 엑스포 이후 관광도시로 발돋움한 데 편승해, 여수시의 관광객을 남해군으로 유입시킬 수 있다. 특히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한 관광객이 남해군으로 바로 올 수 있게 돼 신규 관광수요 창출이 가능해진다.
여수시 역시 남해군과의 상생구조 확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을 포함한 경제권이 형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여수시를 중심으로 고흥군과도 팔영대교로 연결돼 있어, 한려해저터널이 개통되면 관광문화권이 서부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동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연결축으로 하는 남해권 관광문화권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 올해 694억원의 예산이 확보됐으며, 2026년 정부 예산안에는 520억원이 반영된 상태다. 전남도는 원활한 사업 마무리를 위해서는 380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판단, 국회와 정부 등에 건의하고 있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감사원은 지난 9월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시공사의 조기 개통 제안과 달리 실시설계 계약 과정에서 공사 단축 계획을 삭제해 개통 시점이 약 1년 가까이 늦춰졌다고 지적했다. 원래 2030년 완공 계획이었던 것이 현재는 2031년 개통으로 조정된 상태다.
지역 의회에서도 준비 태세를 점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남해군의회는 상권 침체 우려, 정주 여건 개선, 교통망 구축, 환경 피해 대응 등 전 분야의 미래지향적 대응 전략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6200여 소상공인의 상권 잠식 우려, 서면 일대 정주 수요 증가에 대한 대비, 연죽로터리~서상 구간 병목 해소 등이 핵심 과제로 지적됐다.
한편 경남도는 이 터널과 연계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근 국도 5호선 기점을 기존 통영시 도남동에서 남해군 창선면까지 43㎞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부산 가덕도~거제~통영~사량도~남해~여수로 이어지는 '남해안아일랜드하이웨이' 구축의 첫 단추다. 이 해상국도가 현실화되면 부산에서 여수, 고흥, 완도, 목포, 영광까지 남해안 전 구간 약 702㎞를 해상으로 달리며 한려해상·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2030년 개통 예정인 남부내륙철도(김천~진주~통영~거제)와 맞물리면 수도권에서 통영·거제까지 2시간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남해안 관광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이에 따라 통영시 도산면에 한화가 8000억원을 투자해 1070실 규모의 리조트를 건설하고, 남해군에는 451실 규모의 '쏠비치 남해'가 지난달 개장하는 등 대형 숙박시설 건설이 본격화하고 있다.
1시간 30분을 10분으로 줄이는 이 터널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니다. 영호남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남해안 관광지도를 재편하며, 지역 균형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상징적 사업이다. 2031년 바닷길이 열리면 남해안은 하나의 생활권이자 관광권으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