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잘 내세요? 집에서 담배 피우세요?”…내년부터 임대차 계약이 달라진다
2025-12-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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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임차인 정보 비대칭 해소 목적
내년 초 서비스 출시 예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계약 전에 서로의 신용과 평판을 확인하고 임대료 체납이나 흡연 같은 생활 리스크까지 살펴보는 ‘쌍방 검증’ 임대차 모델이 내년 초 등장한다.

집 계약 과정에서는 이전 거주자의 생활 흔적이나 새로 들어올 사람의 거주 태도 같은 ‘보이지 않는 변수’가 뒤늦게 문제로 불거지는 일이 잦다. 실제로 세입자 입장에서는 계약 당시엔 멀쩡해 보이던 집이 입주 후 곰팡이 자국이나 훼손 흔적이 드러나거나 실내 흡연 냄새가 빠지지 않아 생활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집주인 역시 계약 전에는 알기 어려운 리스크를 떠안는다. 월세 체납이 반복되거나 연락 두절로 관리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고 실내 흡연이나 생활 습관 문제로 이웃 민원이 쌓여 갈등이 커지는 사례도 이어진다.
결국 임대차 계약이 체결되는 순간까지도 상대의 신용이나 평판, 거주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 신호를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가 분쟁의 불씨가 돼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계약 단계에서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집주인과 세입자가 필요한 정보를 상호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는 프롭테크 전문기업과 신용평가기관 등과 협업해 2026년 초 ‘임대인·임차인 스크리닝 서비스’를 출시하고 임대차 계약 과정에서 양측에 필요한 정보를 상호 제공하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지난 7일 밝혔다.
◈ 임대인이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세입자 정보
서비스가 적용되면 임대인은 계약을 앞둔 임차인의 임대료 납부 명세와 체납 이력 등 기본적인 지급 신뢰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전 임대인의 추천이나 평가처럼 평판 데이터도 함께 제공돼, 거주 태도에 대한 간접 정보가 쌓인다.
여기에 신용 정보 등 금융 데이터가 묶이고, 생활 패턴 관련 정보도 종합 형태로 전달된다. 협회는 그동안 월세 미납 가능성, 주택 훼손 우려, 실내 흡연 여부, 반려동물 문제처럼 집주인이 계약 전에 파악하기 어려웠던 요소를 제도권에서 점검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 세입자가 살펴보는 집주인·주택 위험
임차인에게 제공되는 정보도 계약 안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등기부 등본 분석을 통한 권리 관계 진단이 기본으로 포함되고, 해당 주택의 담보 위험이나 선순위 설정 여부를 계약 전에 확인할 수 있다. 임대인의 보증금 미반환 이력, 국세·지방세 체납 현황 등은 전세 사기나 보증금 사고 가능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제공된다. 선순위 보증금 규모를 추정해 보증금 회수 위험을 예측하는 자료도 더해져, 임차인이 계약 단계에서 위험도를 한 번 더 따져볼 수 있게 된다.
서비스 도입 방식도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협회는 내년 상반기까지 프롭테크 기업이 운영하는 부동산 플랫폼에 우선 적용한 뒤 이용자 반응과 운영 안정성을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후 네이버 부동산이나 직방 등 주요 중개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협회 측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사전 동의를 전제로 정보를 제공하는 구조인 만큼 플랫폼 안에서 동의 절차와 조회 범위가 정교하게 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전세사기 이후 커진 비대칭을 줄이려는 시도
협회가 이번 모델을 추진한 배경에는 전세 사기 여파로 심화된 정보 비대칭 문제가 있다. 임차인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강화되면서 임대인은 신용도, 보유 주택 수,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 여부, 보증 사고 이력, 세금 체납 여부 등 민감한 정보를 폭넓게 공개해야 하는 흐름이 자리 잡았다.
반면 임차인 정보는 제도적으로 확인 경로가 거의 없어, 집주인들이 체납 가능성이나 생활상 리스크를 계약 전까지도 알기 어렵다는 불만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구조가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분쟁 건수는 2020년 44건에서 2024년 709건으로 늘었다.
최근 국회 전자청원에서 ‘임차인 면접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청원인은 임대인이 세입자의 신용과 거주 태도를 서류나 면접으로 심사할 수 있어야 악성 임차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고, 독일·미국 등 일부 국가의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해외에서는 임대차 계약 전에 세입자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가 이미 널리 자리 잡아 있다. 미국에서는 최대 부동산 플랫폼인 질로우가 대표 사례로 꼽히는데 세입자가 계약 과정에서 신용 점수와 연체 기록을 포함한 금융 정보는 물론 범죄 기록 등까지 제출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독일 역시 집을 구하는 사람이 자신의 소득과 직업 거주 배경 등을 정리한 설명서를 작성해 집주인이나 금융기관에 내는 문화가 보편적이다. 공유숙박 시장에서도 비슷한 방식이 작동한다. 에어비앤비에서는 집을 빌려주는 호스트가 게스트를 평가하고 그 기록이 다시 다음 거래의 참고 자료로 쓰이면서 계약 전 신뢰를 쌓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임차인 보호의 취지는 유지돼야 하지만 지금은 보호 강도를 일방적으로 높이기보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책임과 정보를 균형 있게 맞추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어느 수준까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지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하며 새 스크리닝 서비스가 그 논의를 현실로 옮기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