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대 1 경쟁 뚫었다...블라인드 테스트 심사위원들 홀린 '이 술'의 정체

2025-12-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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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매료시킬 한국술 12선 공개

국세청이 이번에는 술 소믈리에로 변신했다. 우리 술, 즉 K-SUUL을 세계적인 명품으로 키워내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 2일, 중소기업의 우수 주류를 발굴해 해외 진출을 돕는 2025 K-SUUL AWARD를 처음으로 개최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최종 12개의 국가대표 술을 공개했다.

사실 이 화려한 행사의 이면에는 조금 씁쓸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흔히 술 하면 소주와 맥주를 떠올리며 즐기는 사이, 정작 주류 무역 수지는 심각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2022년에는 1조 3천억 원대, 2023년에는 1조 2천억 원대, 그리고 올해도 벌써 1조 1천억 원이 넘는 무역 적자가 났다. 해외 비싼 위스키와 와인은 물밀듯이 들어오는데, 우리 술의 수출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탓이다. 그래서 국세청이 직접 나섰다. 독창성과 성장 가능성을 가진 우리 술을 찾아 해외 인지도를 높이고, 이 적자 구조를 한번 뒤집어보겠다는 계산이다.

2025 K-SUUL AWARD / 국세청
2025 K-SUUL AWARD / 국세청

이번 선발 과정은 꽤 까다로웠다. 지난 9월부터 참가를 신청받았는데, 총 175개 중소기업이 366개나 되는 제품을 출품하며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심사는 맛과 향, 빛깔을 보는 블라인드 테스트는 기본이고, 해외 시장 트렌드에 맞는지, 얼마나 독창적인 스토리가 있는지를 따지는 서류 심사까지 거쳤다. 국민심사단 40명을 포함해 주류 전문가, 대기업 수출 실무자, 심지어 인플루언서까지 참여해 세계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술을 골라냈다.

뽑힌 12병을 살펴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선 탁주, 약주, 청주 부문에서는 '도한청명주'와 '산사춘', 그리고 '조선 약주'가 이름을 올렸다. 특히 산사춘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산사나무 열매로 빚은 그 독특한 맛과 붉은빛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과실주와 맥주 부문은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수상작 중 하나인 오드린의 '베베마루 아내를 위한'은 이름부터 남다르다. 고생한 아내를 위해 만들었다는 헌정 와인인데, 이런 따뜻한 이야기가 한국의 자연을 담은 맛과 어우러져 심사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배상면주가의 '복분자음'은 전북 고창의 복분자로 빚어 특유의 새콤달콤한 향을 자랑하고, 맑은 내일의 '사화 유자'는 거제 유자를 착즙해 상큼한 과육의 질감을 살려냈다.

한국인의 소울인 소주 부문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눈에 띈다. 지비지스피리츠의 '경복궁 소주'와 내외디스틸러리의 '내외39', 그리고 선양소주의 '사락GOLD'가 그 주인공이다. 특히 100% 국내산 보리만을 사용해 오크통에 숙성시킨 '사락GOLD'는 위스키 못지않은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 이날 경복궁 소주의 전진우 대표는 수상 소감에서 "앞으로 더 성장해서 세금을 많이 내는 기업이 되겠다"는 재치 있고 뼈 있는 말을 남겨 좌중을 미소 짓게 만들기도 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 외 주류 부문이다. 한국 술이라고 해서 꼭 막걸리와 소주만 있는 게 아니다. 김창수위스키 증류소의 '김포 2025'는 한국인이 만든 정통 위스키로 당당히 선정되었다. 꿀을 불에 태워 캐러멜화하여 발효시킨 '보쉐700'은 중세 레시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냈고, '차이나타운'이라는 술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영감받아 탄생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제 우리 술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2025 K-SUUL AWARD 최종 우수 주류 명단 / 국세청
2025 K-SUUL AWARD 최종 우수 주류 명단 / 국세청

선정된 이 술들은 앞으로 국세청이 보증하는 K-SUUL 인증 마크를 달고 세계를 누비게 된다. 단순히 마크만 붙여주는 게 아니다. 국세청은 이들 제품이 대형 유통사의 해외 현지 매장에 진열되고 판매될 수 있도록 판로를 열어줄 계획이다. 당장 내후년인 2026년 5월, 홍콩에서 열리는 비넥스포 아시아 국제 주류 박람회에 대한민국 K-SUUL관을 마련해 이들 제품을 우선 전시하고 해외 바이어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고 한다.

국세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찾아가는 K-SUUL서비스를 통해 양조장을 직접 방문해 수출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듣고 해결해 주는 맞춤형 지원도 약속했다.

home 조희준 기자 chojoon@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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