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의 진짜 ‘자랑거리’는 얼굴이 아닌 ‘의로움’이었다
2025-12-1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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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라"…잊혀진 영웅들의 도시, 정체성을 다시 묻다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여수 가서 돈 자랑 말고, 벌교 가서 주먹 자랑 말고, 순천 가서 인물 자랑 말라." 남도 땅에 널리 회자되는 이 말은 순천이라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궁금증을 동시에 자아낸다.
그러나 순천학연구소(상임대표 허석)의 깊이 있는 연구는, 우리가 이 ‘인물’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순천이 자랑하는 인물은 화려한 외모나 세속적인 명성이 아닌, 시대의 어둠 속에서 촛불처럼 자신을 태워 공동체를 밝힌 '의로운 사람들(義人)'이었다.
#붓과 총칼을 든 의인들, 위기 속에서 빛나다
순천의 역사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분연히 일어선 인물들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구한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 순천은 호남 의병 운동의 핵심 거점이었다. 강진원 의병장은 전남 동부권을 호령했고, 권대화 의병은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순국했다. 낙안 군수였던 임병찬은 대한독립의군부 조직에 참여하며 저항의 불씨를 지폈다. 일제강점기, 억압이 극에 달했을 때도 순천의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1919년 4월 순천 장터, 박항래는 맨손에 백지를 흔들며 만세 시위를 이끌다 옥고 끝에 순국했다. 만주 벌판에서는 백강 조경한이 100회가 넘는 무장 항일 투쟁으로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 이들 모두가 바로 순천이 자랑하는 진짜 ‘인물’들이다.
#영웅의 도시, 그러나 깊게 새겨진 상흔
그렇다면 어째서 오늘날 순천에서는 "인물이 사라졌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것일까. 그 답은 도시가 겪어야 했던 깊은 역사적 상처에 있다. 일제의 혹독한 탄압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목숨과 삶을 앗아갔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1948년 여순사건이라는 비극이 도시를 덮쳤다. 이념의 광풍 속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지역을 이끌던 수많은 리더와 지식인들이 희생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야만 했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잊혔고, 그들의 이름은 시간 속에 묻혔다.
#자랑할 것은 외모가 아닌 ‘의로움’이라는 정신
순천학연구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물 도시’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순천의 인물이란 위기의 순간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진 용기, 불의에 맞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감수한 희생, 그리고 지역을 밝히는 지식과 신념 그 자체다. 이는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도시의 후손들이 계승하고 내면화해야 할 숭고한 정신적 유산이다.
#기억에서 박물관으로, 도시의 혼을 되살릴 ‘인물 프로젝트’
이 위대한 정신의 계보를 되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제시됐다. 허석 순천학연구소 상임대표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순천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인물 프로젝트’가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순천의 인물사를 재정비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인물박물관'과 '전문 도서관' 건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허 대표의 구상에 따르면, 박물관은 잊혀진 인물들의 생애와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도서관은 순천 출신 작가, 지식인, 운동가들의 저작과 기록을 집대성해 학술 연구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순천의 위대한 정신을 복원하고, ‘인물의 도시’라는 명성을 되찾는 장대한 여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