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 노폐물' 두 손으로 빼내는 방법, 한국인이 찾아... 신기할 정도로 간편

2025-12-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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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간단하고 과학적일수가... 뇌 노폐물 배출통로 발견
‘림프관에 물리적 자극 가하면 뇌 노폐물 배출된다’ 밝혀내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뇌도 청소가 필요하다. 우리 뇌는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면서 온갖 찌꺼기를 만들어낸다. 이 찌꺼기가 쌓이면 치매가 온다. 그런데 한국 과학자들이 이 찌꺼기를 간단하게 청소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얼굴 피부 아래에 숨어 있던 비밀 통로를 발견한 것이다.

고규영 박사(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가 이끄는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이 뇌 속 노폐물이 얼굴 피부 아래의 림프관을 통해 배출된다는 사실을 동물실험으로 밝혀냈다. 특히 이 배출 경로에 정밀한 물리적 자극을 가하면 뇌척수액 배출이 2, 3배 늘어난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 저널 '네이처'에 지난 6월 5일 실렸다.

우리 뇌는 하루 종일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수많은 대사 활동을 한다. 이 과정에서 노폐물이 만들어지는데, 이게 쌓이면 큰 문제가 된다. 신경세포를 손상해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치매 같은 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이 노폐물을 배출하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뇌 속 노폐물은 뇌척수액이라는 물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뇌척수액은 뇌를 보호하는 일종의 쿠션 역할을 하는 액체다. 사람의 경우 뇌 주변에 약 150mL가 있고, 하루에 500mL 정도가 새로 만들어진다. 이 뇌척수액이 노폐물을 담아서 밖으로 내보내는데, 문제는 이 물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정확히 몰랐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특수 생쥐를 이용해 이 경로를 추적했다. 림프관에만 형광물질이 나타나도록 만든 생쥐에게 뇌척수액 추적용 형광 물질을 주입했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뇌척수액이 눈 주위, 코안쪽, 입천장의 림프관을 타고 흐르다가 얼굴 피부 아래 림프관으로 모였다. 주로 눈과 코 옆 부분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턱밑샘 림프절로 빠져나갔다.

림프관은 우리 몸의 하수도 같은 것이다. 조직에서 나온 노폐물과 체액을 모아서 림프절로 보낸다. 림프절은 이 노폐물을 걸러내고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는 곳이다. 연구팀이 발견한 것은 뇌에서 나온 노폐물도 이 림프 시스템을 통해 처리된다는 사실이었다.

진호경 선임연구원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이영전 박사 연구팀과 함께 이 배출 경로가 쥐뿐만 아니라 영장류에도 존재함을 확인했다"며 "사람에게도 유사한 뇌척수액 배출 경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영장류에서 관찰된 뇌척수액 배출 림프관 분포  지주막하강 내 주입된 뇌척수액 형광 추적자가 안와주위, 비측벽, 천경부 림프관에서 관찰됐으며 턱밑샘 림프절에서 형광 축적이 확인됐다. 입천장과 뺨 안쪽 점막 림프관에서도 형광이 관찰되어 생쥐 실험 결과와 일치하는 패턴을 보인다. /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
영장류에서 관찰된 뇌척수액 배출 림프관 분포 지주막하강 내 주입된 뇌척수액 형광 추적자가 안와주위, 비측벽, 천경부 림프관에서 관찰됐으며 턱밑샘 림프절에서 형광 축적이 확인됐다. 입천장과 뺨 안쪽 점막 림프관에서도 형광이 관찰되어 생쥐 실험 결과와 일치하는 패턴을 보인다. /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

연구팀은 2019년과 2024년에 뇌척수액이 뇌 하부 뇌막 림프관과 비인두 림프관망을 통해 목 부위 안쪽 림프절로 배출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비인두는 코 뒤쪽 목 안쪽 부분을 말한다. 당시 연구에서 목 림프관에 약물을 써서 뇌척수액 배출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하지만 이 림프관은 목 깊숙이 있어서 실제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발견한 얼굴 피부 아래 림프관은 다르다. 피부 가까이 있어서 접근하기 쉽다. 연구팀은 여기에 주목했다. 노화된 쥐를 관찰한 결과, 코안쪽 림프관과 입천장 림프관은 변형돼 기능이 떨어졌지만, 얼굴 피부 아래 집합림프관은 구조와 기능이 정상으로 유지됐다.

이 집합림프관은 두개골 안쪽 뇌척수액을 바깥쪽으로 펌프질해서 빼내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늙은 쥐의 얼굴 피부 아래 집합림프관에 정밀한 저강도 기계적 자극을 줬다. 그러자 뇌척수액 배출이 2~3배 늘어났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윤진희 선임연구원은 "고강도 자극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며 "정밀한 강도 조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자극의 세기를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장비를 개발해 피부에 가하는 자극을 세밀하게 조절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얼굴 피부를 너무 세게 누르면 안 되고, 적당한 힘으로 정확하게 자극해야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마치 마사지를 할 때 힘 조절이 중요한 것과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다음 두 눈 주위와 코 양 옆, 턱과 목 사이를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가볍게 마사지한다. 고 단장은 마사지 강도에 대해선 화장품 크림을 바르듯 살살 만지면 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크다. 첫째, 뇌척수액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지도를 완성했다. 둘째, 두개골을 열거나 약을 쓰지 않고도 뇌 노폐물 배출을 조절할 방법을 찾았다. 비침습적이라는 말은 몸에 상처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전하고 간편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고규영 연구단장은 "이번 성과는 뇌 속 노폐물을 청소하는 뇌척수액 배출 경로의 지도를 완성한 것은 물론, 뇌척수액의 배출을 뇌 외부에서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며 "향후 치매를 포함한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에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는 현대 의학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다. 전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뇌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는 것이 치매 치료의 핵심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연구는 그 방법을 찾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셈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은 동물실험 단계고,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현재 영장류를 대상으로 추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에게도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피부 가까이 있는 림프관을 정밀하게 자극해서 뇌 노폐물 배출을 늘릴 수 있다면, 치매 예방이나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니 환자 부담도 적다.

이번 연구는 IBS 혈관 연구단이 오랫동안 쌓아온 연구의 결실이다. 고규영 단장은 혈관과 림프관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2019년에 뇌막 림프관을 발견한 것도, 2024년에 비인두 림프관망의 역할을 밝힌 것도 모두 이 연구팀의 성과다. 이번 발견은 그 연구들을 완성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뇌 청소, 이제는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얼굴 피부 아래 숨어 있던 작은 통로가 치매 없는 세상을 만드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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