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또 '응급실 뺑뺑이'...대학병원 12곳에서 거절 당했다
2025-12-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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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곳 거부 끝 심정지…소아 응급의료의 붕괴
병상 부족이 부른 비극,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길
부산에서 감기 치료를 받던 10살 아이가 응급 상황에 빠졌지만, 소아 병상을 이유로 여러 병원에서 수용을 거부당한 끝에 심정지 상태에 이르는 일이 발생했다.
16일 MBN이 단독 보도한 내용이다.
부산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15일 오전 부산 사하구의 한 소아과병원에서 감기 증상으로 치료를 받던 초등학생이 수액을 맞던 중 갑작스러운 의식 저하와 호흡곤란을 보였다. 병원 의료진은 즉시 이상 징후를 확인하고 응급 이송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119에 신고했다. 아이는 당시 스스로 호흡이 어려운 상태로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신고를 받은 119구급대는 곧바로 소아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의 상태를 고려하면 최대한 가까운 대학병원으로의 이송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병원 반경 10km 이내에는 고신대병원, 부산대병원, 동아대병원 등 대형 대학병원이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병원은 모두 소아 병상 부족 등을 이유로 환자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후 연락한 다른 병원들 역시 비슷한 사정을 들며 수용을 거부했다. 구급대는 아이를 태운 채 병원과 병원을 잇따라 연결하며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총 12곳의 병원이 소아 환자 수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구급대가 13번째로 연락한 부산진구의 온병원 응급센터에서야 소아 환자 수용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는 결국 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병원을 찾아 헤매는 동안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아이의 상태는 병원 도착 직후 급격히 나빠졌다. 의료진이 도착을 확인하자마자 심정지 상황이 발생했고, 즉각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가 시행됐다.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고 자발 호흡도 돌아오지 않았다. 의료진은 보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아이를 인근 상급병원으로 다시 이송했다.
이번 사건은 소아 응급의료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급 상황에서 병상 부족을 이유로 소아 환자를 받아줄 병원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소아 환자는 상태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이송 지연은 곧 생명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소아 응급의료 인프라가 성인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해왔다. 소아과 전공의 지원 감소와 전문 인력 부족, 병원 경영 부담이 겹치면서 소아 응급 진료를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종합병원협회 관계자는 응급 상황에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은 의료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에 가깝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인력 확충과 소아응급전담센터 확대 없이는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병상 확보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소아 응급의료를 수익성과 분리된 공공의료 영역으로 명확히 설정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문제를 의료기관의 선택에 맡겨두는 한 같은 비극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한 아이의 응급 이송 과정에서 드러난 의료 공백은 특정 병원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응급 상황에서도 보호받아야 할 가장 취약한 존재인 아이들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이번 사건은 소아 응급의료 체계를 전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분명한 경고로 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