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값싸게 배 채우려고 먹었는데…전 세계가 찾아 전성기를 맞았다는 '한국 음식'
2025-12-17 10:23
add remove print link
올해도 사상 최대치 수출 기록
매운맛 하나로 세계를 사로잡으며 국내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음식이 화제다.

바로 ‘K-라면’ 수출이 올해도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K-푸드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라면이 수출 성장을 주도하는 대표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라면 수출액은 13억 8176만 달러(약 2조 390억 원)로 집계됐다. 이는 이미 지난해 연간 수출액인 12억 4838만 달러(약 1조 8422억 원)를 넘어선 수치다. 이에 따라 K-라면은 2015년 이후 11년 연속 사상 최대 수출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커졌다.
10년 전만 해도 K-라면의 해외 소비는 교민 수요 비중이 컸다. 2015년 당시 연간 수출액은 2억1879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후 미디어와 SNS를 통해 K-라면에 대한 인지도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글로벌 수요가 급증했고, 그 결과 수출 규모는 10년 만에 6배 이상 확대됐다.
이 같은 해외 흥행은 단순한 한식 유행을 넘어 K-컬처 전반의 확산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SNS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매운맛에 도전하는 콘텐츠가 퍼지고, K팝과 K드라마 속 일상 음식으로 반복 노출되면서 라면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소비자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다.

특히 매운맛은 K-라면을 차별화한 핵심 요소로 꼽힌다. 자극적인 맛 자체보다 이를 체험하는 과정이 하나의 ‘경험’으로 소비되면서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해외 MZ세대를 중심으로 ‘불닭 챌린지’가 확산되며 라면이 단순한 식품을 넘어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삼양식품이 있다. 대표 제품인 불닭볶음면은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삼양식품 전체 매출의 약 80%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매운맛이라는 뚜렷한 콘셉트에 현지화 전략을 결합해 글로벌 스테디셀러로 안착했다는 평가다.
라면은 1960년대 초 한국에 처음 등장했다. 국내 최초의 라면은 1963년 삼양식품이 출시한 ‘삼양라면’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정부가 쌀 소비를 줄이고 분식 장려 정책을 추진하던 시기와 맞물리며 라면은 대체 식량으로 빠르게 보급됐다. 값이 저렴하고 조리 시간이 짧다는 점에서 도시 노동자와 서민층을 중심으로 소비가 확산됐다.

1970년대에 들어 라면은 본격적인 대중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봉지라면 중심의 생산 체계가 안정화되면서 전국 단위 유통이 가능해졌고, 학교 매점과 군부대, 야외 노동 현장 등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됐다. 이 시기 라면은 간편식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인의 식생활 구조 안에 깊이 스며들었다.
1980년대에는 국물 맛과 조리 방식이 다양해지며 제품 경쟁이 본격화됐다. 소고기, 해물, 김치 등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국물형 라면이 잇따라 출시됐고, 라면은 간식이 아닌 한 끼 식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86년에는 컵라면이 도입되며 조리 편의성이 한층 강화됐다.
1990년대 이후에는 해외 수출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해외 교민과 유학생 수요가 중심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한류 확산과 함께 현지 소비자층이 확대됐다. 매운맛을 강조한 제품들이 등장하며 한국 라면만의 차별성이 형성됐고, 이는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됐다.
이처럼 한국 라면은 분식 장려 정책 속에서 시작해 대중 식품을 거쳐 수출 상품으로 성장해 왔으며, 현재는 K-푸드와 K-컬처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식품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K-컬처 확산과의 시너지도 두드러진다. K팝과 드라마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접점이 넓어지면서 한국 음식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농심은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협업한 신라면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더욱 키웠다.

글로벌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생산 확대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삼양식품은 올해 밀양 제2공장을 준공해 수출 전용 생산 능력을 크게 늘렸다. 여기에 첫 해외 생산기지인 중국 공장은 2027년 1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어 글로벌 생산 역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농심은 이미 미국 2곳과 중국 2곳의 공장에서 라면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부산 녹산공장 부지에 수출 전용 공장을 착공했으며, 2026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당 공장이 가동되면 연간 12억 개 규모의 수출 전용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되며, 2030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61%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오뚜기 역시 글로벌 생산 거점 확대에 나섰다. 내년 미국 공장 착공을 시작으로 2027년 본격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주력 제품을 앞세워 2030년까지 해외 매출 1조1000억 원 달성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진라면과 치즈라면 등 수출 제품이 미국 코스트코에 입점하며 북미 유통 채널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콘텐츠에 노출된 제품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라면 역시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각인되면서 수출 증가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