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돈이 무려... 무명 작곡가였다가 BTS 곡 하나로 로또 터진 외국인

2025-12-1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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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곡으로 벌어들인 저작권료만 최소 100억 원 이상

데이비드 스튜어트 / 스튜어트 X
데이비드 스튜어트 / 스튜어트 X

2020년 8월 21일 새벽 4시 30분. 영국 런던의 한 어두운 방에서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던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화면에선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부모 집 침실에서 노트북 한 대로 만든 이 곡이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는 직감, 그리고 지난 12년간 소파를 전전하며 버텨온 처절한 무명 생활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그를 덮쳤다. 그는 훗날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쏟아부은 시간, 진짜 피와 땀과 눈물, 소파에서 자던 날들과 여행들이 떠올라 그냥 울었다"고 털어놨다.

스튜어트의 음악 인생은 결코 화려한 꽃길이 아니었다. 배우이자 가수인 아버지와 댄서 출신 어머니 밑에서 예술적 감각을 키웠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영국 밴드의 드럼 세션으로 시작해 500회가 넘는 공연 무대에 기타리스트로 섰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늘 남의 차지였다. 2010년대 중반 기회를 찾아 떠난 미국 애틀랜타에서도 지옥 같은 생활은 계속됐다. 하루 2~3회씩 밤샘 세션을 소화하며 수백 곡을 써냈지만, 손에 쥐는 돈 대신 얻은 건 보컬 프로덕션 기술뿐이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무명 작곡가로서의 삶은 고단했다.

데이비드 스튜어트 / 스튜어트 X
데이비드 스튜어트 / 스튜어트 X

반전은 2020년 코로나19 봉쇄와 함께 찾아왔다. 갈 곳 없던 스튜어트는 부모 댁 침실에 자리를 잡았다. 화려한 스튜디오 대신 노트북과 오디오 인터페이스 하나가 전부인 초라한 환경이었다. 그때 업계에 ‘BTS가 첫 영어 싱글을 찾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들이 모두 이 '성배'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승자는 침실에서 줌(Zoom)으로 파트너와 머리를 맞댄 스튜어트였다. 그는 드럼부터 베이스, 피아노, 백그라운드 보컬까지 모든 소리를 자신의 방에서 직접 연주하고 녹음하며 혼신을 다했다.

곡 작업 중 신의 한 수는 가사 수정이었다. 원래 ‘소 콜 미 미스터 다이너마이트’였던 가사를 입에 착착 붙는 ‘라이트 잇 업 라이크 다이너마이트’로 바꿨다. 그는 이를 귀를 간지럽히는 '반짝반짝한 가사'라고 불렀다. 의미보다 음향적 임팩트가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이 적중한 것이다. 처음엔 다른 곡을 골랐던 BTS 측에서 2주 뒤 "다이너마이트를 선택했다, 이건 1위 곡이 될 거다"라는 확답을 보냈을 때, 그는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음을 직감했다.

방탄소년단(BTS) / BTS 페이스북
방탄소년단(BTS) / BTS 페이스북

'다이너마이트'는 말 그대로 폭발했다. 유튜브 조회수 1억 뷰를 단숨에 돌파하고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조지 클루니가 가사를 낭독하고 전 세계가 안무 챌린지에 동참하는 동안 부모에게 "제발 큰 거 하나만 터졌으면 좋겠다"고 빌던 작곡가는 성층권으로 날아올랐다. 이 곡 하나로 벌어들인 저작권료만 최소 100억 원 이상. 스튜어트는 곡의 성공 직후 LA 부촌에 47억 원 상당의 저택을 구입하며 'BTS 복권' 당첨을 현실로 증명했다.

이제 그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사는 동네에서 자신만의 제대로 된 스튜디오를 꾸리고 에드 시런, 정국 등 톱스타들과 작업하는 팝계의 거물이 됐다. 스포티파이 21억 스트리밍이라는 대기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2년 동안 남의 집 소파에서 잠을 청하며 버텼던 무명 작곡가의 간절함이 침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세계를 뒤흔든 기적을 만들어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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