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한 방울 안 나는데… 한국, '이것' 덕분에 비상시 210일 버틴다
2025-12-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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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노력의 결실, 석유 수입 끊겨도 210일 버틸 수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마침내 정부 비축유 1억 배럴 시대가 열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월, 올해의 마지막 비축유를 실은 유조선이 거제 석유비축 기지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알렸다. 이로써 우리 정부가 확보한 비축유 물량은 정확히 1억 배럴을 달성하게 됐다.
이번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이 나온다. 당시 제1차,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며 에너지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낀 정부는 그때부터 석유비축 계획을 세우고 기름을 모으기 시작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석유 수급 위기에 대비해 지난 45년 동안 꾸준히 곳간을 채워온 결과다.
1억 배럴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수 있다. 현재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 중에서 네 번째로 많은 양이다. 여기에 민간 정유사들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약 9,500만 배럴(2025년 10월 기준)까지 합치면 우리나라가 보유한 총물량은 더 늘어난다.
이 물량이면 비상사태가 발생해 석유 수입이 전면 중단되더라도 꽤 오랜 기간을 버틸 수 있다. IEA가 정한 일 순 수입량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무려 210일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정부는 이번 1억 배럴 달성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계획을 내놨다. 지난 12월 초 마련된 제5차 석유비축 계획이 그것이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 동안 진행될 이 계획의 핵심은 양보다는 질이다. 무조건 양을 늘리기보다는 변화하는 국내 수요에 맞춰 내용을 알차게 바꾸겠다는 것이다.
우선 2030년까지 비축 목표를 1억 260만 배럴로 잡아 현재보다 약 250만 배럴 정도만 소폭 늘리기로 했다. 대신 비축유의 구성을 바꾼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중질유(무거운 기름)를 줄이고, 국내 산업 현장에서 더 많이 쓰이는 경질유(가벼운 기름)로 교체할 예정이다. 산업 여건과 수요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함이다.
오래된 시설에 대한 안전 관리도 대폭 강화한다. 석유비축 기지는 거대한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는 만큼 안전이 최우선이다. 정부는 땅속에 묻힌 배관이나 저장 탱크를 정밀 검사해 노후한 설비는 새것으로 바꾸고, 재난 대응 시스템과 소방 시설도 최신 수준으로 고도화할 방침이다.

지난 45년간 우리는 네 번의 비축 계획을 거치며 총 1억 배럴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제 시작되는 다섯 번째 계획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공급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닥쳐올지 모를 그 어떤 에너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대응 역량을 키워나가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