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었던 마한의 심장, 함평에서 다시 뛴다
2025-12-3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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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직접 가꾸는 '살아있는 역사공원'으로 대변신…130억 규모 국가유산 정비사업 선정 쾌거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수천 년의 시간을 품고 함평의 땅속에 잠들어 있던 고대 마한(馬韓) 왕국의 역사가 마침내 기지개를 켠다. 전남 함평군(군수 이상익)이 국가유산청이 주관하는 ‘역사문화권 정비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되며, 잊혔던 역사를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되살리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서막을 올렸다. 전국 21개 지자체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남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된 이번 쾌거는, 함평이 품은 역사적 가치를 국가가 공인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천년의 잠 깨우는 마한의 ‘타임캡슐’
이번 사업의 심장부는 영산강 유역 마한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마산리 고분군’과 ‘신흥동 유물산포지’다. 특히 마산리 고분군은 한반도 고대사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전방후원형(열쇠 모양) 무덤과 원형 무덤이 함께 존재하는 대규모 유적으로, 당시 이 지역을 호령했던 마한 최고 지배층의 위상과 독특한 장례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핵심적인 사료다. 바로 인근의 신흥동 유물산포지는 당대 사람들의 생활 공간과 무덤이 함께 발견된 복합 유적으로, 초기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생활사 박물관’으로 평가받는다.
#단순한 복원을 넘어, ‘머무는 역사’로의 재탄생
함평군은 2026년부터 3년간 총 13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이 일대를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방문객들이 ‘머무르고 체험하는 역사 문화권’으로 재창조할 계획이다. 훼손된 유적을 본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고, 고분군 주변의 옛 지형과 경관을 되살리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방문객들이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고분길’과 고즈넉한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며, 방문자 센터와 같은 편의시설도 들어선다. 이는 흩어져 있던 역사 유산을 하나의 유기적인 관광 자원으로 엮어, 지역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큰 그림이다.
#프로젝트의 진짜 주인공, ‘마을 주민’
이번 프로젝트가 다른 유적 정비사업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주민’이 사업의 핵심 주체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함평군은 사업 초기 단계부터 ‘주민 역사문화리더’를 양성하고 주민협의체를 운영하여, 지역의 역사를 가장 잘 아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사업 전반에 반영할 계획이다. 또한, 마을만들기 사업 등 다른 부서의 사업과도 적극적으로 연계해, 공사가 끝난 이후에도 주민들이 스스로 유산을 가꾸고 방문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 방침이다. 이는 유산을 박제된 과거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과 어우러지는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접근이다.
#유산을 넘어, 지역의 희망으로
함평군은 이번 사업을 통해 고대 마한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을 넘어, 이를 지역 경제 활성화와 주민 자긍심 고취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포부다. 군 관계자는 “이번 선정은 함평 마한 역사의 중요성을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자랑스러운 성과”라며 “전문적인 보존과 정비를 바탕으로, 주민이 참여하고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전국 최고의 역사문화권 모델을 만들어, 함평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잠들어 있던 고대 왕국의 유산이 주민들의 손길을 통해 어떻게 깨어나 지역의 희망으로 피어날지, 함평의 새로운 도전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