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에 끼인 한국 석유화학, '핵심기술' 확보 못 하면 미래 없다

2025-12-3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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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공정혁신으로 제품개발 50% 단축, 화학산업 구조전환 본격화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의 공급과잉과 수요 위축으로 국내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고부가 소재 전환과 인공지능(AI) 기반의 공정 혁신을 골자로 한 대규모 산업 재편 청사진을 내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지자체와 산학연 관계자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학산업 혁신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열고, 현재 세계 5위 수준인 한국 화학산업을 2030년까지 4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K-화학 차세대 기술혁신 로드맵 2030을 전격 발표했다.

단순 자료 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단순 자료 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이번 로드맵은 기존 범용 제품 위주의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스페셜티(Specialty·특수 목적 고기능성 소재)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고부가 전환, 친환경 전환, 글로벌 환경규제 대응 강화라는 3대 축을 설정하고 R&D와 관련 인프라를 대폭 고도화할 방침이다. 특히 소재별로 쪼개져 있던 기존 연구개발 방식에서 탈피해 원료부터 소재, 응용, 최종 수요 산업(반도체·미래 차 등)까지 가치사슬 전반을 하나로 묶는 원 팀(One-Team)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

기술 혁신의 도구로는 AI와 디지털 전환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부는 이른바 M.AX(Material AI Transformation·소재 산업의 AI 전환) 확산을 통해 소재 설계 단계부터 실제 제조 공정까지 AI를 전방위로 도입하기로 했다. 신소재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기 위해 자율 실험 체계를 구축하고, 원료 투입과 중합, 분리 등 공정 전 과정에 지능형 제어 시스템을 구현한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제품 개발 기간은 50% 단축하고 공정 에너지는 40% 절감한다는 목표다.

k-화학 차세대 기술혁신 로드맵 / 산업통상부
k-화학 차세대 기술혁신 로드맵 / 산업통상부

구체적인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해 전문가 80여 명이 6개월간 분석해 도출한 217개의 요소기술도 확정했다. 산업부는 이 기술들을 시장성과 확보 수준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시장이 크고 기술 수준이 높은 분야는 단기 집중형으로 상용화를 돕고, 기술 고도화가 필요한 분야는 장기 관리형 도전 과제로 관리한다. 잠재력은 크지만, 기술력이 낮은 분야는 시장 개척형으로 묶어 특허 분석 등을 지원하며, 성숙 단계의 기술은 성과 확산형 인프라 지원에 집중한다.

사업의 엔진 역할을 할 화학산업 혁신 얼라이언스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수요 기업과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석유화학 핵심 기업, 그리고 130여 개 연구소와 중소기업이 총망라됐다. 얼라이언스는 반도체, 미래 차, 이차전지 등 9개 분과별로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예컨대 수요 기업이 필요한 핵심 성능 요건을 제시하면 중소·중견 소재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까지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세부 프로젝트 내용을 보면 미래 산업의 핵심 소재들이 대거 포함됐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온디바이스 AI 패키징용 초저유전 열관리 소재를,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폴더블 및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에 쓰이는 극한 유연 광학 소재를 개발한다. 모빌리티 부문은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한 초경량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차세대 리튬 배터리용 전해질 기술 확보에 주력한다. 이 외에도 우주항공용 복합 소재 국산화, HVDC(초고압직류송전) 케이블용 절연 소재 등 수입 의존도가 높거나 미래 시장 선점이 필요한 핵심 과제들이 추진된다.

정부는 지난 19일 석유화학 기업들이 제출한 사업재편안과 연계해, 재편에 참여하는 기업을 R&D 지원 과정에서 최우선으로 배려하겠다는 방침도 분명히 했다. 산업부는 이번 로드맵을 바탕으로 내년 1분기 중 대형 R&D 사업을 본격적으로 기획해 추진할 예정이다. 박동일 산업정책실장은 "이번 로드맵이 위기에 처한 화학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대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며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을 약속했다.

home 조희준 기자 chojoon@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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