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상 떠난 국민배우 안성기... 그의 영정사진에 얽힌 일화
2026-01-0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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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배창호 감독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 당시 모습

뿔테 안경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 5일 별세한 배우 안성기의 장례식장 영정사진 속 그 모습은 1987년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 당시의 모습이다.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사진작가 구본창이 포착한 사진은 고인의 부인 오소영 씨가 가장 사랑한 사진으로, 그가 평생 사모하고 사랑한 안성기의 순수한 심성이 담겨 있다.
안성기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30일 한남동 자택에서 음식을 먹다 기도에 걸려 쓰러진 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암이 재발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영정사진의 배경이 된 '기쁜 우리 젊은 날'은 한국영화계의 거장 배창호 감독이 연출하고, 역시 거장 반열에 오른 이명세 감독과 배창호 감독이 공동 각본을 맡은 작품이다. 1987년 5월 2일 개봉한 이 영화는 당시 19만 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안성기는 연극을 하는 여대생 혜린(황신혜)을 짝사랑하는 소심한 청년 영민 역을 연기했다.
구본창과 안성기의 인연은 1982년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 촬영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구본창은 대학 동문이자 절친인 배창호 감독의 촬영 현장을 찾았다가 안성기를 처음 만났다. 5년 뒤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 현장에서 구본창이 카메라에 담은 안성기의 모습은 그렇게 고인의 마지막 영정으로 남게 됐다.
배창호 감독은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해 198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작가주의 감독이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의 작품으로 대종상과 영평상 등에서 감독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특히 안성기와 함께 한 작품들로 한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배창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이명세 감독은 1988년 배창호 감독과 공동으로 쓴 시나리오 '개그맨'을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을 통해 독특한 영상미와 감각적인 연출로 한국영화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의 각본을 함께 쓴 두 거장 감독의 호흡은 안성기의 섬세한 연기와 만나 완성도 높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대학 시절 연극 공연을 통해 혜린을 짝사랑하게 된 영민이 익명으로 꽃과 과일을 보내고 사진 앨범을 만들어 전하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혜린이 다른 남자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이혼 후 돌아온 뒤, 영민의 끈질긴 사랑에 결국 그와 결혼하지만 임신중독으로 출산 후 사망하는 비극적 결말로 끝난다. 영화는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촬영됐다. 황신혜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안성기는 제32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제26회 대종상 영화제 녹음상과 음향효과상, 제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과 특별상, 제6회 한국영화작품상 최우수영화상 등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안성기는 1957년 다섯 살 나이로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서 아역배우로 데뷔한 이래 69년간 1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영화사를 관통한 '국민배우'다. 1980년대 배창호, 이장호 감독과 함께한 '바람 불어 좋은 날', '고래사냥' 등으로 주목받았고,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실미도', '라디오스타' 등 수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8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5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3대 영화상 남우주연상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모두 주연상을 수상한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 첫 남우주연상 수상 연도인 1982년과 마지막 수상 연도인 2012년 사이에는 무려 30년의 시간 차가 있다.
투병 중에도 안성기는 2023년까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4·19민주평화상 시상식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복귀 의지를 보였다. 쓰러지기 5일 전까지도 회의에 참석해 "우리 건강하자"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 작품은 혈액암 투병 중에도 출연한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2023)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신영균문화예술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명예장례위원장은 배우 신영균과 배창호 감독이 맡았고,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의 후배인 이정재, 정우성이 운구를 맡는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 추모공원이다.
정부는 안성기에게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안성기는 세례명이 사도요한인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명동성당 미사에서 성경을 낭독하기도 했다. 1991년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임명됐으며, 평생 구설수 없이 모범적인 삶을 살며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한국외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한 그는 학군 12기로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해 중위로 전역했다.
70년 가까이 영화만을 위해 살아온 안성기는 드라마, 연극, 뮤지컬에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고 오직 영화에만 몸담았다. 그는 생전 "부모님 뜻도 아니었고 내 뜻도 아니었다. 그냥 운명적으로 시작됐다"며 자신의 영화 인생을 회고했다. 한국영화가 어려울 때도 TV 드라마 출연을 자제하며 영화계를 지켰고, 좋은 작품이든 그렇지 않은 작품이든 한국영화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출연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모습처럼, 안성기는 평생 순수한 심성으로 관객과 동료들에게 사랑받은 진정한 국민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