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온 지 13년 됐는데... 화제성 꾸준해 또 개봉하는' 8600억원 흥행' 걸작 영화
2026-02-2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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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이후 최고의 3D 체험이라는 평가까지 받은 영화
구명보트 위에서 소년과 벵골호랑이가 눈을 맞추는 그 장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다시 극장을 찾을 이유가 생겼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다음달 25일 메가박스 단독으로 재개봉한다. 2013년 1월 1일 국내 개봉 이후 13년 만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은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2001년 출판한 베스트셀러 소설 '파이 이야기'다.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700만 부 이상 팔린 작품이다. 소설이 출간된 직후부터 영상화 계획이 있었다. 알폰소 쿠아론, M. 나이트 샤말란, 장 피에르 주네 등이 감독 후보로 거론됐다. 최종적으로 '와호장룡'과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명성을 쌓은 이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얀 마텔은 "이 작품이 영화화되는 상상을 해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영화화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책이 아닌 영화라는 매체가 소설이기에 가능했던 상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안 감독을 만나고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이안 감독 자신도 제작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어린이·동물·물·3D…. 영화를 찍을 때 피하라고 하는 모든 게 이 한 편에 다 있었다"는 그의 말은 이 작품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파이를 연기한 수라즈 샤르마는 촬영 당시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이었다. 그는 실제 식사량을 줄이며 표류로 인해 마르고 피폐해진 파이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네 마리의 실제 벵골호랑이를 바탕으로 만든 CG 캐릭터다.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재현해 화제를 모았다. 파이와 배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배경이 CG로 처리됐지만 처음부터 아이맥스 포맷을 목표로 제작됐기에 바다 위 장면들은 '아바타' 이후 최고의 3D 체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소년 파이 파텔이 가족과 함께 동물들을 싣고 캐나다로 향하다가 태평양에서 난파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화물선 침춤호가 폭풍우에 침몰하면서 구명보트에 오른 파이는 다친 얼룩말과 하이에나, 오랑우탄, 그리고 보트 아래에 숨어 있던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표류한다. 시간이 흐르며 동물들은 차례로 사라지고, 파이와 호랑이만이 남아 227일간 바다 위를 떠돈다. 야광 해파리 떼가 밤바다를 수놓는 장면, 거울처럼 하늘을 반사하는 잔잔한 바다 위로 보트가 떠 있는 장면은 개봉 당시부터 영화사에 남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꼽혔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단순한 생존담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의 구조는 성인이 된 파이가 한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으로 이뤄진다. 후반부에서 파이는 일본 보험사 직원들에게 동물 대신 인간이 등장하는 또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이에나는 사실 잔인한 요리사였고, 얼룩말은 중국인 선원이었으며, 오랑우탄은 파이의 어머니였다는 해석이다. 이 구도에서 리처드 파커가 파이의 또 다른 자아, 혹은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폭력성과 식인의 상징이 아니냐는 해석이 오랫동안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제기돼 왔다. 영화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단정하지 않고 ‘어느 이야기가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남긴 채 결말에 이른다. 이안 감독은 이에 대해 열린 결말에 가까운 구조임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영화가 단순한 반전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의 믿음과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것이 감독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흥행 성적은 뚜렷하다. 제작비 1억2000만 달러가 투입된 이 작품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6억901만6565달러(약 8600억원)를 기록했다. 북미 수익은 1억2498만7023달러였고, 해외 시장에서 특히 강세를 보였다. 중국·홍콩·대만 등지에서 1억 달러 이상을 올렸고, 영국에서도 4000만 달러를 넘겼다. 러시아, 멕시코, 호주, 독일, 일본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발리우드의 영향으로 외국 영화의 무덤이라 불리는 인도에서도 13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아바타'로 3D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이안 감독과 함께 3D 촬영 기법을 주제로 한 홍보 영상에 직접 등장할 정도로 작품은 당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2013년 1월 1일 새해 첫날 개봉한 이 작품은 누적 관객 159만3463명을 동원했다. 3D 상영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와 맞물려 바다와 폭풍, 야광 해파리와 고래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관객의 체험 요소로 주목받았고, 가족·청소년 관객층의 입소문을 타며 장기 상영으로 이어졌다. 2018년 4월에도 한 차례 재개봉된 바 있다.
비평과 수상 성과도 남다르다.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해 최다 수상작으로 감독상·촬영상·시각효과상·음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고, 골든글로브상과 그래미상 등 주요 시상식에서도 수상 및 후보에 올랐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에 이어 연극 무대로도 옮겨졌다. 영국에서 2019년 초연된 연극 버전은 올리비에상, 토니상 등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고, 한국에서는 2025년 12월부터 GS아트센터에서 배우 박정민, 박강현 주연으로 초연이 공연 중이다. 소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무대로 이어지는 이 작품의 생명력이 이번 재개봉과 맞물리며 다시 조명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