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왕과 사는 남자, 빨리 잊혀졌으면 좋겠다"
2026-03-12 20:14
add remove print link
극장 외면하던 관객, 입소문으로 천만 돌파한 이유
손익분기점 절망에서 기적으로, 한국 영화의 희망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이 천만 관객 돌파에 대한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예상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다는 놀라움과 함께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고민도 함께 털어놓았다.
지난 11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에서 장 감독은 김수지 앵커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작품의 흥행과 영화 산업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영화는 지난 6일 개봉 31일 만에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국내 개봉작 가운데 34번째, 한국 영화 중에서는 25번째 천만 영화로 기록됐다.

장 감독은 예상보다 늦게 시작된 흥행 흐름을 언급했다. 그는 “이렇게 전국민적으로 사랑해 주실 줄 몰랐다”며 “개봉 첫날 성적도 좋지 않았고 제 예상의 절반 정도였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겠다고 절망하던 상황이었는데 주말부터 관객 수가 올라가기 시작해 묘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흥행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이유로 최근 극장 환경의 변화를 언급했다. 장 감독은 “그동안 천만 영화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며 “코로나 이후 정세가 크게 변했고 극장이 몰락하고 OTT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문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장은 적자를 만회하려고 티켓 가격을 올리고 여러 가지로 악조건이었다”며 “그 점이 영화인으로서 마음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극장 관람객 수가 줄어들면서 영화 산업의 구조 변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촬영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털어놨다. 그는 “우리 영화는 예산이 풍족한 작품은 아니었다”며 한 장면을 예로 들었다. “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끌어올리는 장면은 화창한 봄날에 찍고 싶었는데 날씨가 흐렸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촬영을 미루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장 감독은 “촬영을 하루 접으면 예산이 문제가 된다”며 “그때 ‘내가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을 언급하며 “하지만 나는 장항준이니까 그냥 오늘 찍자고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천만 관객 돌파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에는 담담한 답을 내놓았다. 장 감독은 “비현실적인, 애니메이션 같은 일”이라며 “빨리 잊혀졌으면 좋겠다. 다른 좋은 작품으로”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가 또 다른 영화로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환경이 돼야 한국 영화 산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극장에서 보고 싶은 한국 영화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강조했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쏟아졌으면 좋겠다”며 “학생들이 영화에 도전하지 않으면 영화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창작자들의 도전이 영화 산업을 유지하는 핵심이라는 의미다.

영화의 의미를 설명하면서는 한 작품을 언급하기도 했다. 장 감독은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을 예로 들며 “극장에서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는 경험 자체가 공동의 감정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이 그런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 자체가 이 영화의 의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영화 산업의 구조적인 측면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 영화 구조는 극장이 돈을 벌고, 극장이 영화에 재투자하는 순환 구조”라며 “이 구조가 맞지 않으면 영화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왕과 사는 남자’가 그 선순환 구조에 대한 희망의 길을 조금이나마 열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