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수상 소감 중 벌어진 일… "노골적이고 악의적인 인종차별" 폭발

2026-03-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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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 작곡가들, 말 한마디 못 하고 퇴장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제가상 수상팀이 16일(한국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수상 소감을 전하고 있다. 흰색 드레스를 입고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이재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감을 밝히는 가운데, 왼편에 선 작곡가들이 준비해 온 소감문을 손에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TV조선 영상 캡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제가상 수상팀이 16일(한국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수상 소감을 전하고 있다. 흰색 드레스를 입고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이재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감을 밝히는 가운데, 왼편에 선 작곡가들이 준비해 온 소감문을 손에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TV조선 영상 캡
트로피를 손에 쥐었지만 마이크가 끊겼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2관왕을 차지했다. K팝을 소재로 한 작품이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상 무대에 우뚝 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수상 직후 터진 것은 박수보다 야유였다. 수상 소감을 전하려던 한국인 작곡가들의 말이 퇴장 음악에 잘렸다. 이 장면은 곧 인종차별 논란으로 번졌다.

16일(한국시각)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케데헌'은 이날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최우수 주제가상을 나란히 거머쥐며 2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6월 공개 이후 글로벌 누적 시청 수 5억 회를 넘기며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작품이 마침내 오스카 무대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논란은 주제가상 시상 때 불거졌다. 수상곡 '골든'의 가수이자 공동 작사·작곡가인 이재(EJAE)가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이재는 눈시울을 붉히며 "훌륭한 상을 준 아카데미에 감사하다. 자라면서 사람들은 내가 K팝을 좋아한다고 놀렸는데, 지금은 우리 모두 한국어 가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상은 성공이 아니라 회복력에 관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약 1분간 소감을 밝혔다.

이어 더블랙레이블 소속 작곡가 이유한이 준비해 온 소감문을 읽으려 마이크 앞에 섰다. 그러나 첫 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퇴장을 재촉하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재와 공동 작사가 마크 소넨블릭이 시간을 더 달라는 손짓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명마저 꺼지고 화면은 광고 영상으로 넘어갔다. 결국 곽중규·이유한·남희동·서정훈 나머지 작곡가 4명은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관왕을 차지했지만 주제가상 수상소감이 도중에 끊기며 논란이 일고 있다. / TV조선

비슷한 상황은 앞서 열린 장편 애니메이션상 시상에서도 있었다. 공동 연출자인 매기 강(한국계 캐나다인) 감독과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이 소감을 마친 뒤 미셸 웡(중국계 미국인) 프로듀서가 마이크를 잡자 퇴장 음악이 곧바로 흘러나왔다. 이때는 음악이 이내 멈추면서 웡이 소감을 끝까지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제가상 시상에서는 아예 조명까지 꺼버렸다. 두 부문 모두 아시아계 수상자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음악이 나왔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날 다른 부문 수상자들에게는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다.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 수상자들은 4분 안팎의 소감 시간을 가졌다. 반면 '골든' 팀 전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분 남짓이었다.

OCN 생중계를 맡은 안현모는 "앞서 단편영화상 수상 소감은 정말 길게 들었다"며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함께 자리한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생방송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며 상황을 수습했지만 시청자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다.

무대에서 말을 잇지 못한 수상자들은 백스테이지로 자리를 옮겨 취재진 앞에서 못다 한 소감을 전했다. 이재는 "레이 아미와 오드리 누나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는데 시상식 측이 잘라서 하지 못했다"며 "그들은 노래 부를 때 끝내줬고, 정말 놀라운 사람들"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유한을 비롯한 나머지 작곡가들도 무대에서 전하지 못한 말들을 카메라 앞에서 대신 풀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매기 강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저처럼 생긴 사람들이 이런 영화에서 자신을 보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게 안타깝다"며 "하지만 이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고, 다음 세대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도 "영화는 문화와 국경을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는 힘이 있다"며 전 세계 젊은 창작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전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해외 주요 매체들도 이 장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CNN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K팝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 장면이 벌어졌다"며 "정말 의미 있는 순간이었고, 시간만 충분히 주어졌다면 더 위대한 장면이 될 수 있었다. 오스카는 K팝을 그렇게 무시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미국 매체 벌처는 "이날 밤 내내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해 발언을 끊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지만, '골든' 팀이 수상했을 때만큼 노골적이고 악의적으로 느껴진 순간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장면은 갑작스럽고 안타까웠다. 올해 내내 차트를 휩쓴 이 노래에는 마땅히 충분한 축하의 순간이 주어졌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연예 전문 매체 데드라인도 해당 장면을 전하며 불편하고 어색한 순간이었다고 평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소감이 중단되자 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고 전했다.

국내 시청자들의 반응도 거셌다. "다른 수상자에게는 긴 시간을 줬으면서 왜 이번엔 잘라냈느냐", "오스카 무대에 처음 선 K팝 팀인데 제대로 된 존중이 없었다", "상은 주면서 소감은 막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인종차별이 맞다", "아카데미 측의 공식 사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잇달았다. "상을 줄 수밖에 없으니 주기는 줬지만, 불쾌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한편 이날 이재는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와 함께 '골든' 축하 무대도 펼쳐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영광과 논란이 동시에 쏟아진 밤이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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