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었던 드레스, 알고 보니...
2026-03-1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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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황실 대례복이 오스카 무대에 서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15일(현지시각) 미국 LA 돌비 극장.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OST '골든'으로 주제가상을 수상한 이재(EJAE·본명 김은재)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 전 세계의 시선이 그의 의상에 쏠렸다. 순백의 드레스 위로 황금빛 장식이 흘러내리는 옷이었다.
이재가 착용한 드레스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르쥬(LEJE)가 이번 오스카 무대를 위해 특별 제작한 커스텀 의상이다. 르쥬의 강주형·제양모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을 맡았으며, 스타일링 디렉팅은 제프리 진과 현석이 담당했다.
의상의 출발점은 100여 년 전 대한제국 황실의 대례복이었다. 구체적으로는 1905년(광무 9년) 그려진 대한제국 관료이자 독립운동가 김가진(1846~1922)의 대례복, 즉 2등 칙임관 관복에 적용된 무궁화 문양에서 영감을 얻었다. 드레스 곳곳엔 금빛 무궁화가 피어 있다. 르쥬 측은 이 무궁화 장식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영원과 끈기, 사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무궁화 주변을 감싸는 유려한 금속 장식은 전통 문양인 '당초문'을 형상화한 것이다. 덩굴식물이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형태를 도안화한 당초문은 생명의 흐름과 번영을 뜻한다. 드레스의 바탕색인 순백은 백의민족을 상징하며, 전면과 소매에 더해진 굵은 금동 장식은 고대 한국의 금관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했다. 전체 실루엣은 극 중 헌트릭스 멤버 루미가 지닌 '빛'의 상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르쥬 측은 "이번 오스카 무대를 위해 제작된 의상은 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에서 시작됐다"며 "헌트릭스에서 선보였던 이재의 제복을 잇는 또 하나의 이야기이자 '골든'이 말하는 '빛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빛나는 순간이란 단숨에 도달하는 결과가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시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레스에 부착된 모든 금속 장식은 한국 전통 금속 공예 장인인 두석장의 손을 거쳐 제작됐다. 주얼리는 스와로브스키 제품이다. 
이재의 오스카 무대는 의상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이재는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와 함께 '골든' 축하 공연을 펼쳤다. 농악 의상을 입은 고수들의 북 연주와 갓을 쓴 댄서들의 춤, 한복 차림의 판소리 공연으로 시작된 무대는 한국적 정서를 전면에 내세웠다. 세 가수가 '골든'을 열창하는 동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엠마 스톤을 비롯한 할리우드 스타들도 응원봉을 들고 흔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재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으로 출발해 12년의 무명 시절을 견뎌냈다. 트와이스·에스파·르세라핌·엔믹스 등 K팝 대표 그룹의 곡을 써온 작곡가로 먼저 이름을 알린 뒤 지난해 10월 솔로 데뷔 싱글 '인 어나더 월드'를 발표하며 아티스트로 전면에 나섰다. '골든'은 지난해 미국 내 온디맨드 스트리밍 21억 회를 기록하며 현지에서 가장 높은 스트리밍을 기록한 K팝 가수로 집계됐다.

'골든'은 이번 오스카에 앞서 골든글로브·크리틱스초이스 주제가상을 수상했고,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프리미어 세레머니에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트로피를 받았다. 이는 그래미 사상 한국 국적의 K팝 작곡가로서는 최초 수상 기록이다.
무대 위에서 이재는 눈물을 흘리며 "훌륭한 상을 준 아카데미에 감사하다. 자라면서 K팝을 좋아한다고 놀림을 받았는데 지금은 모두가 한국어 가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상은 성공이 아니라 회복력에 관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는 "한국에 있는 팬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이 무대에 섰다는 것,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이렇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모두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벅찬 심정을 드러냈다.